brunch

매거진 책을 먹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하 Sep 23. 2022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라히리

독서기록


줌파 라히리의 책은 처음 읽었다. 오랫동안 유명한 책이었으나 신문에서 그녀의 미모를 보고 제꼈다.ㅎ 그러다가 얼마 전 어느 분 리뷰를 보고 마음이 동해서 두 권을 사서 읽고 있다. 라히리의 문장은 퍼즐 바닥에 단어들을 던져 놓고 섬세한 감수성으로 각도 맞춰서 끼워 놓은 듯한 생경함이 아름답게 직조되어 있다. 스웨터라는 챕터는 동화 한 편을 읽는 것 같다.


그리고는, 한 줄의 문장에서 멈췄다. 그 어떤 아름다운 문장보다도 나를 설레게 하면서도, 손끝으로 타고 도는 환희와 절망의 기운이 동시다발적으로다가 전신을 돌아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때 전공과는 거리가 먼 일을 했었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나이도 있어서 또 다른 일은 상상도 하지 않고 살고 있던 내게, 한 줄의 문장이 제대로 꽂혔다.


‘삶의 나머지를 걸고 문을 나서는 기분’은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본다. 또 한 번 타오르고 싶다는 때늦은 열망을 키워야 할까. 아니면 그냥 이토록 반복적이고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지금의 일을 숭고하게 해야 할까.


이 봄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며칠 전까지도 몰랐다. 마치 카이로스의 시간을 건너는 여행자처럼 저 한 줄의 문장을 오래도록 곱씹다가 마침내는 남은 생의 전부를 채울 라히리의 스웨터와 같은 변화가 내게도 일어나기를, 이 봄에 진정으로 염원해 볼까? 나이를 든다는 것이 이토록 무엇을 시작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이제 처음 알아버린 나는 아예 정신마저도 정말로 늙어 버린 것은 아닐까? 문장 하나가 허공에 걸쳐진 채로 봄날이 지나가고 있다.


쓰다 보니 리뷰도 아닌 샛길로 가버린 나의 주절거림! 끝!


2022년 5월 어느 날 씀




*** 지난봄에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리뷰를 브런치에 옮기고 있다. 이 리뷰 아닌 리뷰는 5월에 썼다.


삶의 나머지를 걸고 문을 나서는 일을 벌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생각하고 있는 일은 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 걸까!


나는 여전히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나무를 바라보며 길을 걷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과 나무 사이에 내가 있음을 느끼고 그 경계 사이에 존재하는 내가 감각으로 무언가를 느낄 때면 ‘살아있구나’를 느낀다.


시간이 자꾸자꾸 흐르면 언젠가는 할머니가 되겠지. 할머니가 되어서 적어도 그때 그것을 할 걸 그랬어라는 후회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벌이려는 일이 또 후회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그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만을 안다는 거다.


사는 일은 늘 경계에서 선택을 한다. 아님, 온전한 나로 만나는 일을 찾지 못한 것이어서, 늘 경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2년 9월 23일 씀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누네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