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은 전쟁과도 같다고 한다. 사는 일이 이미 고행이므로. 그러나 진짜로 전쟁이 일어난 현실은 고행도 무엇도 아닌, 아수라장일 터이다.
여기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아수라장을 넘어서 지옥을 맛본 느낌이다. 처음 몇 장을 읽어가다가 불경한 것들의 내밀한 질서에 호흡이 한번 멈칫했고, 그것이 진실인줄 알았는데 진실이 아니라 소설속의 인물이 쓴 허구라는 사실에 두 번째 숨을 가다듬었으며,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대혼란이 환장하게끔 열거되어 뇌가 과부하걸린 듯 했다.
1부, 2부, 3부의 시점이 다르게 전개되고 간결하던 작법이 뒤로 갈수록 복잡해진다. 간결하던 작법이 진실인줄 알았으나 그것이 허구이고, 복잡해진 3부가 허구인 것 같지만 현실이라고 알려준다. 이로써 작가는 문학과 현실의 세계, 즉 자신과 타인의 세계에서 정체성과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쓰기 행위가 하나의 속임수가 될 수 있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즉, 보여지는 행위 자체만으로 서술하는 방식이 진실이 아닐 수 있으며, 복잡한 서사 구조가 오히려 현실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쓰면 쓸수록 병이 깊어지고, 쓰는 행위는 자살행위’라는 작가의 인터뷰에서도 그 의중을 볼 수 있다.
전쟁의 폐허와 이념의 대립중인 세계에서 선악의 윤리적 잣대는 무의미하다. 오로지 생존이 그 자체 목적인 시대에 존재들의 증명은 가혹할 수 밖에 없다. 표현하기 힘든 저 깊은 울림과 함께, 책표지 에곤쉴레의 그림처럼,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읽는 내내 서늘하고 공포영화를 보듯 기이하기까지 했던 책이었다. 이상, 끝!
2022년 어느 날 씀.
*** 전쟁에 관한 수업준비를 하다가, 지난 여름에 읽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 떠올랐다.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전쟁의 무서움을 설명하기 보다는 그냥 이 책을 읽으라고 하고 싶다. 물론 19금에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 전개되지만, 요즘 중고등학생이 19금을 모르지는 않을터이니, 크게 상관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