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표지부터 사람을 끄는 뭔가가 있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이라니! 우울증을 이토록 강렬하고도 신선하게 다룬 책이 있었을까 싶은 제목이다. 여성우울증을 다룬다기에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인가 하고 펼쳐 들었다가 생각의 회로를 완전 전환시켜버리는 작가의 사유가 신선하고 통렬했다.
여성호르몬 때문이야, 너무 예민해서 그런거야 등등 지극히 여성적이거나 개인적 요인으로만 치부하던 여성우울증을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시각으로 다루어서 히스테리라는 단어조차도 근사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학문은 권위를 가진 자들에 의해 발달해 왔고 그 권위는 지금껏 남성중심적인 세상에서 그들의 시각으로 해석된 방향으로 전개되어왔기에 지극히 편향적인 시각으로 히스테리가 비춰질 수밖에 없었을 게다.
읽다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떠올랐다. 영화를 본 주변 여성들이 깊은 공감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집에서 애하나 보는 게 뭐가 어렵냐’는 반응을 내보였을 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윗세대 어른들은 모두 그렇게 살지 않았느냐고 항변하면 고통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일까.
고통은 누가 더 크냐의 크기의 비교가 아니다. 개인과 사회의 구조적인 관계형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의 담론은 시대가 달라지면서 변화하므로 세대간의 비교는 크기와 양으로 비교측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관습에 의한 의식이 무의식적으로 남아서 그렇게 여성조차도 의식이 남성성을 발현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분명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직도 더 깨져야 하는 불균형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은 얼마나 힘이 드는 시도였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 만큼, 우울증을 경험한 작가가 자기 목소리로 사람의 아픈 마음을 이야기해주어서 감사하다. 끝!
*** 오늘 읽은 시
<나는 춤추는 중> 詩 허수경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
바람의 혀가 투명한 빛 속에
산다, 산다, 산다, 할때
나 혼자 노는 날
나의 머리칼과 숨이
온 담장을 허물면서 세계에 다가왔다
나는 춤추는 중
얼굴을 어느 낯선 들판의 어깨에 기대고
낯선 별에 유괴당한 것처럼
추신)
브런치에 메모 기능이나 간단한 메시지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이렇게 일상기록을 남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간단한 기능 같은 거 말이다.
하와이에서 친구가 왔다. 아티스트인 내 친구! 머리가 아파서 종합검사하러 왔다, 걱정스럽다. 오전 11시에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삼청동을 향해 걸었다. 미친듯이 불어대는 바람결 사이를 덜덜덜 떨며 걷다가, 커다란 창이 있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실컷 떨었다. 그렇게 몸을 녹이고 온갖 것들을 다 파는 가게들을 전전하며 스카프, 목걸이, 티셔츠, 원피스 등등을 샀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커다란 전신 거울에 서로를 들여다 보며 깔깔거렸고, 수십년전에도 그랬던 우리들을 떠올렸다. 서글프고도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그리고는 다시 30년지기 친구 한명을 함께 만나기 위해 교보문고로 향해 걷다가 얼어버릴 것처럼 추워서 걸을 수도 없는 지경이라, 택시를 탔다.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셋이서 뜨끈한 나베와 안동소주를 마셨다. 며칠째 금주를 하고 있었건만, 금주를 깼다. 오, 마이 러브 알콜! 한병을 마시고도 나는 멀쩡하다. 우리가 만났던 이십대가 얼마나 예뻤는지 몰랐던 그 과거의 시간을 반추하니, 술이 눈에 고이고, 마음에 고이는데, 어떻게 취할 수가 있겠는가.
오전 11시 만나서 밤 9시에 헤어지고 집에 들어오니, 11시다. 내일을 또 살아야 하므로 자야하는데, 자야하는데, 자야하는데.......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 시간 속에 들어 앉아 버렸다.
친구야, 안녕! 잘 가렴! 건강하게 살다가 몇 년 후에 한국 오면 또 보자꾸나! 그때는 지금보다 더 늙어 있겠지? 다음에는 꼭 호캉스를 하자. 시간의 주름을 잔뜩 쥐고서는 또 그렇게 한병을 비우자꾸나, 사랑하는 내 친구!
백년만의 외출/ 2022년 10월 12일 새벽 1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