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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하 Nov 29. 2023

모란, 부귀영화를 꿈꾸며

그림 자체가 樂이어라


<궁중 모란도> 안동 한지, 안채 물감




사극 드라마를 보다가 한 장면을 자세히 본다. 중전마마의 배경으로 펼쳐진 병풍이, 아름답다. 그 병풍으로 인하여 중전마마의 자태가 한층 더 고아하게 품격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마주한 6폭 병풍 그림은 색도 찬란한 모란꽃이 가득했으니, 이름하여 <모란병> 이라 하였다. 한 눈에 확 꽂혀버린 나는, 모란 꽃그림을 한 장이라도 그려보기로 결심을 한다.


드디어 지난 여름, 일주일에 3시간씩, 3개월을, 시간을 쪼개서 그 커다란 <모란도> 한 장을 그렸다. 힘들게 그렸지만 실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드라마에서 봤던, 예의 그 기품 서린 모란도와는 거리가 먼 모란도가 그려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몇 달이 지난 이제와 다시 꺼내 보니,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무엇이 나를 잡아끈다.


모란꽃은 '화중지왕(花中之王)'이라하여 모든 꽃중에 왕이라 칭한다. 한자어로 목단(牧丹)이라고도 불리우며, 원산지는 중국이다. 부귀영화, 번영을 상징한다하여, 조선에서는 19세기부터 길상적 이미지로 궁중회화나 민화의 소재로 그려졌다. <모란도>의 모란은 실제의 꽃보다 더 화려하고 크게 그려지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시기적으로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민중들이 부귀영화와 번영의 염원을 담아서 그렸기 때문이라 한다.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의 선비들은 매화를 소재로 하는 문인화를 주로 그렸지만 민중들에게는 화려한 모란이 주는 긍정의 에너지가 그들의 시름을 덜어주고 희망을 주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살면서 부귀영화를 바란 적은 없었다. 그런 내가 모란도를 그리면서 한번은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설핏, 내비쳤다. 그러나 그것은 염원보다 더 큰 욕심이었다. 욕심이 크면 우리 몸은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며 긴장상태가 된다고 한다. 긴장된 몸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유발하고 몸에 이상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였었나. 여름 내내, 나는 지긋지긋하게도 몸이 아팠다. 백혈구의 호산구 수치가 최고치를 넘어가면서 물만 마셔도 배가 아팠고, 응급실을 들락거리기를 수차례 하고서야 통증이 사라졌다. 그것은 병명도 명확하지 않은 이상하고도 이상한 복통이었다.


그러니까 보태자면, 나의 긴장 상태는 모란도를 그리면서 시작되었고, 모란도가 완성되면서 절정에 이르고서 사라졌다는 점이 더 이상한 거였다. 구차한 변명이겠지만 당시에 나는, 나의 일과 재정상태가 붕괴 되는 과정을 겪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적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았던 일을 밥벌이로 하고 있던 내게 총체적 위기감을 느낄 만큼 수입이 줄면서 나는 초초해졌던 거다. 그 초초함을 모란도에 쏟아 부으며, 모란도를 다 그리면 부귀영화가 내게 오기를 염원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신도 믿지 않는 내가 영세한 영혼으로 미신적인 믿음을 갈구하였지만 어찌되었든, 우여곡절 끝에 나의 모란도는 탄생했고 복통은 사라졌다.


복통이 사라지고, 여름 내내 죽만 먹다가 따뜻한 쌀밥을 한 숟갈 입 속에 넣으니, 울컥 눈물이 났다. 세상에나, 그토록 옹골찬 밥알이라니! 그 순간, 하루하루 소중하게 현존을 알아차리는 것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더없는 樂 아니겠는가, 라는 ‘알아차림’ 이 벼락처럼 스쳐갔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를 삼아도, 낙은 그 속에 있다. 의롭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있어 뜬구름 같으니라.” 고 하셨다. 내가 비록 거친 밥을 먹지는 않았으나, 밥벌이가 좀 줄어 들더라도, 내 한 몸 누울 자리가 있고, 내 입에 따뜻한 밥이 들어가서, 살아있음이 한순간이라도 감격스럽다면, 그것이 곧 부귀영화를 얻는 일보다 낙이 되는 '알아차림' 아니겠는가 말이다. 뜬구름 같은 물질의 욕망에 잠시 눈을 돌린 것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으로 나의 모란도를 다시 들여다보니, 이 또한 오늘의 낙이 되고 있다.


다행이다. 번아웃 되어, 세상 모든 일에 무기력을 동반하던 내가 모란도 한 장에 욕망을 담아냈다는 것 자체도 사실, 자족할 일인거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이었을지라도 겹겹이 색을 칠할 때마다 마음에 담겨있던 깊은 시름을 잠시라도 잊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또한 슬픔은 깊었으나 모란꽃들의 향연이 산뜻하게 색을 입었으므로, 나는 그렇게 삶의 균형을 맞춘거라고 스스로 위무한다. 이제는 무엇을 그리든, 오롯이 그림 자체가 樂 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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