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영을 시작한 이유 1
학창 시절, 나는 달리기 시간이 제일 싫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차례가 되면 선에 맞추어 한 줄 나란히 선다.
아이들의 시선이 닿은 곳은 검은 선글라스를 낀 체육 선생님.
까만 피부에 단단한 몸을 가진 체육 선생님은 안 그래도 목소리가 크신 분인데 그때만큼은 더욱 목청껏 소리를 지르셨다. "준비, 탕!" 출발 신호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다다다다 달린다.
심장은 터질 것만 같고, 다리는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앞 서 달려가는 아이의 등을 보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뛰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조바심이 난다. 발만 더 뻗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쉬이 일어나지 않았다.
가뿐 숨을 쉬면서 도착하면 등수는 4등, 아니면 5등.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1, 2등 아이들을 보면서 부러움과 초라함을 동시에 느꼈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자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는 달리기 재주가 없다는 것을.
다음에 싫었던 것은 장거리 달리기 시간이었다.
400M 달리기였나. 운동장을 네 바퀴 돌았었다.
단거리 달리기와 달리 장거리 달리기는 출발이 화기애애하다. 서로 웃거나 떠들면서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으로 달리기를 시작한다. 승부가 벌어지는 건 세 바퀴를 막 돌았을 무렵. 마지막은 체력 싸움이다. 선두에 있는 아이들이 슬슬 속력을 내기 시작하고, 뒷 그룹의 아이들과 격차는 매우 벌어진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 분명 "모두 함께 결승점에 도착하자." 말하던 친구들이 먼저 도착해서 쉬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분노와 함께 배신감을 느끼곤 했다. 친구들의 달콤한 약속이 깨지는 것을 몇 번 경험한 뒤,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같은 방법으로는 달리기를 하지 않겠노라고.
체육 선생님은 달리기를 하기 전에 매번 그 시기를 예고했었다.
나는 예고된 날짜를 달력에 표시했다. 그러고는 나름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매일 조금씩 달리기를 했다. 처음에는 반바퀴, 그다음에는 2/3바퀴, 한 바퀴 이런 식으로 체력이 늘 때마다 조금씩 달리는 거리를 넓혀 나갔다. 이렇게 연습을 하다 보니 달리는 것이 그전만큼 싫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그날이 왔다.
출발 선에 반 아이들이 모두 섰다. 아이들은 웃으면서 "오늘도 다 함께 완주하자. 같이 결승선에 들어가자."라는 달콤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오직 결승선만을 바라보았다.
체육 선생님이 "준비 시작." 하고 외치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마치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혼자서 다다다다 앞으로 뛰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오잉?"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1등이 하고 싶었고, 그동안 노력했던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었다. 한 바퀴를 먼저 돌고 와서 맨 뒤에 섰다. 친구들이 세 바퀴를 달려야 한다면 나는 두 바퀴만 달리면 됐다. 마음속으로 자꾸만 웃음이 났다. 나 자신이 대견하다고 느껴졌다. 마지막에는 발이 매우 느려지고, 몸이 무거워지면서 호흡이 딸렸지만 괜찮았다. 1등을 하고 벤치에 앉아서 아직도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 쾌감은 달콤하고 짜릿했다.
그 뒤 달리기를 할 때마다 매번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친구가 내게 와서 물었다.
"너, 또 제일 먼저 뛰어갈 거니?"라고.
친구의 질문에 당황했다. 다음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할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무엇보다 최근 달리기 연습을 하지 못했고, 혼자 달려 나가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1등을 한 쾌감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혼자 달리는 건 짜릿했지만, 뒤에서 달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면서 서로 독려하는 그곳에 그 말을 한 켠으로 슬그머니 믿으면서 나도 함께 달리고 싶었다. 나는 머뭇 거렸다. 내 표정을 지켜보던 친구가 말했다.
"나도 네 방식대로 해 보려고, 최소한 1등 아니면 2등이 될 수 있잖아."
"아아, 글쎄."
다시, 달리기 시간이 되었다. 체육 선생님은 당연하게도 같은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셨다. 아이들 역시 당연하게도 같은 약속을 하면서 재잘거렸다. 친구가 나를 바라보았다. '언제 달려 나갈 거야? 지금이야?'라고 내게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달리고 싶었다. 아이들이 발맞추어 달리자 흙바닥에서 먼지가 폴폴 올라왔다. 아이들의 숨소리, 땀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운동장 세 바퀴 돌았을 때, 선두 그룹은 달리기 시작한다. 거의 맨 뒤에 있는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남은 거리를 여전히 내 곁에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발을 맞추기 시작했다. 거의 꼴찌로 도착을 해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였다. 체육 선생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하고 내게 다가오셨다. 그러고는 가만히 내 등을 쓸어주었다.
나는 어쩐지 선생님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