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영

# 수영을 하게 된 이유 2

by 메이 메이

이십 대 초반,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3년이 된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나는 보육교사로 어린이집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무렵 같이 입사한 동기들이 원을 하나 둘 떠나고, 어린이집은 한 차례 새로운 사람들로 물갈이가 되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물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예전 사람들이 자꾸 그리웠다. 나 역시 다른 곳으로 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발표하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도 내 것과 다른 사람의 것, 고르지 못하고 남겨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결정장애인 내가 퇴사를 결심하기까지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무수한 시간들이 함께 했었다. 어렵게 입을 뗀 결정에 원장님과 주임 선생님은 한사코 말리셨는데,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그게 무엇이든 들어주겠노라고 말씀하셨다. 그 무렵 원장님과 주임선생님의 미션은 '퇴사하는 교사 붙잡기' 였는지, 두 분은 마주칠 때마다 나를 붙잡고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묻고 또 물었다.

두 분의 절실함을 보면서 마음이 갈대처럼 마구 흔들렸다. 그만두겠노라고 한 달이나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내린 결정이었건만, 그분들께 결심한 것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우물쭈물하는 내가 그분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어쨌든 퇴사하기로 한 것도 더 다니겠다고 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서 나는 매일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같은 고민을 하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나는 출근을 해야 하고 아아,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다가 그만 풀썩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다리가 어찌 되었는지 오른쪽 발목이 욱신거렸다.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고, 무엇이든 잘 참는 내 입에서 신음 소리가 계속 나왔다. 조는 것도 잠든 것도 아닌 가수면 상태로 겨우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오른쪽 발목 골절'이었고, 반깁스를 한 상태로 3개월가량 지내야 한다고 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결심한 것을 밀고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샘솟기 시작했다. 놀라서 달려온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웃었다. 원에서는 정말 고맙게도 기다려줄 수 있다고 했지만 그대로 퇴사했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꼬꼬마 시절, 같은 쪽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다친 곳은 또 다칠 수 있다고 하셨다. 주변을 잘 보면서 조심조심 걸으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말씀하셨다. 다친 다리는 3개월이 되자 뚝딱 나았다. 젊음이란 그런 것이다. 똑 부러진 다리도 치료만 잘하면 금방 붙는 것. 나는 다시 일어났고, 원하는 데로 새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엄마 말처럼 그 다리가 다시 부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세 번째로 다친 건 사십 대 초반이었다. 자매처럼 매일 붙어 다니던 동네 친구가 하루아침에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시시덕거리며 이 집 떡볶이가 맛있나 저 집 떡볶이가 맛있나 수다를 떨었던 친구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식에 적잖이 당황했나 보다.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부러움인지 질투인지 시샘인지 원망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불쾌한 기분을 잔뜩 품고, 마트에 가다가 그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이전과는 달리 웃을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훨훨 날아가는 친구를 어쩐지 뒤따라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엉엉 울면서 다리를 질질 끌고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내린 진단은 "발목 인대 파열"이었다. 물리치료를 받는 데, 시퍼렇게 멍들고 욱신거리는 발목에 동그란 어떤 것이 다가왔다. 이를 악물어도 신음소리가 새어져 나왔다.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세 번째로 다친 발목이었다. 내 나이는 이제 사십 대, 이 다리는 나을 수 있을까? 나는 스무 살 때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자꾸만 걱정이 됐다.


시간이 지나자 나는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발목을 치료하는 동안 친구는 이사를 갔다. 우두커니 남겨진 나는 친구와 보냈던 시간을 홀로 보내야 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의지했었나,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이렇게 많았나.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집에 있으면 미움과 원망이 한없이 올라왔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길을 걷고 공원을 걸었다. 산을 찾아서 한 시간, 두 시간을 마냥 걸었다. 무의미한 시간이 흘러갔다. 매일 걷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걷는 건 마냥 좋았다. 걷는 동안 내 안에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나가는 걸 느끼게 된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솜처럼 잔뜩 젖은 솜뭉치들을 길이나 산에다 조금씩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마치 동화 속 '헨젤과 그레텔'의 조약돌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하지만 다친 발목은 그러하지 못했다. 멀리까지 다녀온 날은 돌아오는 길에 욱신거리는 발목을 느꼈다. 절뚝이면서 집으로 왔다.

나는 양반 다리를 하지 못했다.

절뚝이며 걷는 날들이 쭉 이어졌다.

달리기는 아예 할 수 없었다. 달리다가 금방 제자리에 서야 했다.

책을 오래 본 날은 목뒤가 뻐근했다.

한쪽이 시원찮다 보니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쭉 기울어진 채 살아야 하나. 그러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수영을 만났다.


( 사진 출처: 픽사베이 )


작가의 이전글오늘도, 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