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가 구달의 전부는 아니다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를 읽고

by 쇠네스보헨엔데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 문법대로라면 나에게 <희망의 이유>는 고전이다. 지상파 TV 프로그램이 책 한권을 추천하면 시청자들이 모두 따라 읽던 순수의 시대에, MC 김용만이 목놓아 부르던 타이틀 중 하나가 <희망의 이유>였고, 나는 사두고 책장에 모셔두었던 이 책을 틀림없이 읽었다고 단단히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년 훌쩍 넘어 누군가의 추천으로 여전히 친정집 책장에 변색된 채로 방치된 구판이 아닌 하드커버 개정판을 '다시' 읽게 되었고 몇 페이지만에 내가 착각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구달은 대중 앞에 형성된 자신의 전형적 이미지인 침팬지 연구자로서의 삶 대신, 진화론을 거부하지 못하는 기독교인으로서의 독특한 세계관과 신앙관을 펼치는 것으로 첫 챕터를 시작했다. 진화론자가 기독교 신앙 안에 머무른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내게 이 책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였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썼기에 일점일획도 틀림없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자면, 사람이 흙으로 지은 바 되었음을 믿지 않고 대신 업과 윤회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어떤 거대한 영적인 힘, 바로 신 안에 있다고 강하게" 느끼는 제인 구달의 신앙은 철저한 모순이다. 그 역시 자신의 신앙을 "성경의 자구에 구속되지 않는 나만의 개인적 의미"로 규정한다. 여기서 그의 신앙이 기독교의 틀 안에서 인정되느냐 마느냐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대와 어울리지 않는 많은 것들을 '성경의 무오성'이란 원칙으로 깔아뭉개는 교회 안의 문화에 답답함을 느끼곤 했던 내게, 율법 보다는 몸소 이해하고 체득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하나님을 그려가는 구달의 모습은 구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한국의 기독교 틀 안에서 신앙을 형성해온 누군가에겐 나의 신선한 깨달음이 불편하고 위험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으나, 죄로 인하여 점점 신과 멀어지려는 본성을 지닌 인간이 돌이켜 신과 가까워지려 발버둥치고 그 안에서 체험한 위로를 이웃과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본령이라 이해할 때 나는 구달보다 더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알지 못한다.


구달의 신앙관뿐 아니라 연구적 업적 또한 막연히 내가 알던 바를 훌쩍 뛰어넘었다. 구달이 도구를 활용하는 침팬지를 처음으로 관찰했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인간의 고유성에 도전하여" 인간됨에 대한 재정의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고백하자면, 지난해 번역한 바다거북 보호운동가의 자서전을 소개하면서 어디선가 '제인구달적'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과연 내가 제인구달에 대해 무얼 안다고 감히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와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가 멸종위기 침팬지를 보호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나 그것은 위대한 업적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그는 동물연구를 발단으로 지구생태계를 이해하는 관점을 인간중심에서 생명체중심으로 사고의 전환을 이끈 사상가였고, 이해한 바를 몸으로 실천한 운동가였다.


특별히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그가 일찍이 자기 삶에서 소명의 빛을 발견하고 고난 중에도 그 빛을 확신하며 따라갈 수 있었던 데에는, 인간의 궁극적 운명에 대한 종교적 소신 외에도 강인한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같다.


구달이 탄자니아 오지로 침팬지를 관찰하러 떠나기로 결심하고 두려운 미지의 여정을 함께할 동반자로 어머니를 선택한 장면에서, 고향을 떠나보았던 딸이자 언젠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게 될 딸을 둔 엄마로서 내 마음에는 부러움과 경외가 동시에 솟아올랐다.


"누굴 데려가야 할까?

루이스는 동행할 사람을 잘못 선택하여 내가 연구에서 성공할 기회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했다.

내가 편안히 여길 수 있고, 나와 경쟁하지 않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연구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누가 어머니보다 더 좋을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가 함께 가는 데 동의했을 때 나는 미칠 듯이 기뻤다."


내가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할 때마다 엄마는 말리다 지쳐 마뜩찮게 손을 흔드는 쪽이었다. 흔쾌히 떠나보내다 못해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엄마를 가져보지 나는, 내 딸에게라도 구달의 엄마 같은 엄마가 되어주기로 결심한다. 곰베의 군용 텐트에서 나란히 말라리아를 앓는 엄마, 남겨질 딸을 위해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쌓는 엄마, 낯선 세계에 홀로 남겨두어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 엄마, 때가 되면 불안을 애써 감추며 기쁘게 돌아서는 엄마, 그래서 내내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는 엄마.


책을 처음 잡을 때는 미처 예상치 못한 감상들이다. 구달의 자서전을 읽었으니 침팬지 보호 재단에 기부를 해야겠다거나 동물권 보호를 위해 어딘가 서명이라도 하는 것으로 갈음되리라 예상했던 나는 이 책의 입체성을 너무 얄팍하게 전망했었다. 문득 '자연과의 여정, 희망 그리고 깨달음의 여정'이란 부제가 책 전체를 정확하게 관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깨달음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어 즐거웠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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