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레나 Sep 18. 2022

학기말 초등교사의 하루

나는 학교에 일찍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아직 오지 않은 교실에 가서 제일 먼저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 다음 여유있고 평화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학교에 일찍 오는 아이들이 한 둘 있었는데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어 학교에서 정해진 시간에 등교해 달라고 알림을 보낸 후에 8시 20분은 되어야 하나 둘 등교하기 시작한다.

창문을 열고 텔레비전 화면을 켜고 컴퓨터 전원도 켜고 판서 프로그램에 아침활동 독서를 안내하는 화면을 띄우고 나면 교내 메신저 프로그램에 접속한다. 사실, 메신저는 나중에 켜고 싶은데 혹시나 아침부터 무슨 중요한 메세지가 있을까 싶어 늘 먼저 켜게 된다. 수첩을 꺼내 오전 수업 계획을 확인하고 수업 시간에 사용할 파워포인트나 아이스크림, 비바샘 관련 페이지를 화면에 띄워 둔다. 어제 오후에 복사하지 못한 학습지가 있으면 복사도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하나 둘 인사를 하고 교실로 들어온다.

나는 아침에 학교에 오자마자 자리에 앉아서 책을 꺼내 독서를 하라고 시키는데 아이들이 이제 적응이 되어 아침 시간에는 조용히 오자마자 자리에 앉아 독서를 한다. 물론 가만히 앉아 멍을 때리는 아이도 간혹 있다. 

또, 시끄럽게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도 있다. 그러면 책을 읽던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쳐다보며 한 때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도 한다. 나는 손가락을 입 앞으로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한다. 그럼 대개 조용히 자리에 앉는데 가끔 "00아, 책 읽는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니깐 조용히 자리에 앉아라."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할 때도 있다. 1교시 시작 10분 전이 되면 판서 프로그램에 오늘 일과를 자세히 적어준다.

 

예)1교시: 국어(단원평가 실시, 국어 교과서 필요), 2교시: 수학 3교시: 사회(아이북 준비), 4교시: 과학(전담, 과학실2) 5교시: 창체(안전교육) 

1. 교과서 준비  2. 자기 자리 청소  3. 제출 

-실내에서 뛰지 않기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 하지 않기 -급식 먹을 만큼 받고 잔반 남기지 않기



수업 종이 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아이도 있다. "00아, 아침활동 3단계 해야지."

한 두번 말해도 대답만 하고 말을 안 듣다가 수업 시작 종이 울리면 그제서야 사물함으로 가서 

"선생님, 뭐 챙기라고요?" 하기도 한다. 

"00아, 선생님이 시간 줄 때 해야지. 수업 시작한 뒤에 챙기면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할 수가 없잖아."

아침부터 잔소리가 시작된다. 


1교시 수업은 대개 분위기가 차분하다. 물론 빌미를 주면 큰 소리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남자 아이들 때문에 수업 진행이 잘 안될 때도 많다. 갑자기 "아, 배고파!"라고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아이도 있다. 그러면 "선생님, 오늘 급식 뭐에요?" "아, 오늘 맛있는 거 나왔으면 좋겠다."로 대여섯명의 남자 아이들이 갑자기 혼잣말인듯 아닌듯 큰소리로 수업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종을 몇 번 치고 집중을 시키는 일의 반복이다. 물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예쁘게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 나와 눈만 마주쳐도 싱긋이 웃는 아이들이 있다. 그 웃음이 내게 에너지를 불러 일으키고 수업이 잘 진행되면 나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이 교실 바닥에서 도미노를 가지고 놀거나 보드게임을 주로 하며 노는데 놀면서 생긴 크고 작은 트러블들을 내게 일러주러 오는 아이들이 꼭 있다. 그러면 나는 피아노 의자를 두고 당사자들을 앉힌 다음 사건 조사에 들어간다. 한 명씩 입장을 들어보고 사건이 생긴 원인을 함께 이야기 하다보면 아이들은 "쟤가 먼저 했는데요?" 라며 남탓을 하거나 "쟤도 했어요."하고 제 3자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일단 억울한 마음이 들더라도 사실 관계만 차분히 말하라고 수십 번 교육을 했더니 이제 변명하고 남탓하는 일은 많이 줄어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에게 잘못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순서대로 짚어주면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순조롭게 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건을 하나 해결하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또 요즘 아이들은 나와 달리 뒷끝이 1도 없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또 신나게 논다. 좋은 거겠지?

그런데 문제는 매 쉬는 시간마다 이런 사건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 상담을 진짜 많이 하게 된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장난꾸러기이지만 순한 편이라 대화로 잘 해결이 되긴 한데 자꾸 되풀이되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아이들이니깐 이러면서 배우는 거겠지? 생각하고 아이들에게도 매번 이야기한다.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 할 수도 있어. 이게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았으니깐 인정하고 반성하고 다음부터 안 그러면 돼."

그런데 가끔 지칠 때도 있다. 너무 자주 반복이 되니 말이다. 답답한 마음에 욱 할 때도 있지만 '아직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늘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학기말이 되면서 아이들이 너무 텐션이 높아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내가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쩜 하루 종일 이 아이들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내가 가진 에너지 이상을 소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업 시간에 내가 틈을 주면 애들이 흐트러질 것 같고 쉬는 시간에도 내가 틈을 주면 뛰어다니고 장난치고 싸울 것 같아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실 요즘 너무 힘들다. 


급식 시간에는 자리가 복잡해 아이들 앉을 자리를 지정해주고 마지막으로 앉아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있으면 먼저 먹은 아이들이 식판을 가지고 검사를 맡으러 오는데 처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편식이 심한 아이들이 많다. 지난 주에는 자두가 나왔는데 그 맛있는 자두를 한입만 베어먹고 못 먹겠다고 들고 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니나다를까 잔반통에는 멀쩡한 자두알들이 가득차 있었다.

억지로 먹일 수도 없고 조금씩 더 먹어보라고 말은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저 이거 먹으면 토해요."이다.

그럼 어쩔 수 없이 그냥 보낸다. 학생수가 많기도 하지만 매일 잔반통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요즘 아이들은 부족한 것 없이 자라다 보니 소중한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도 깨끗이 긁어먹고 와서는 "선생님, 저 100점이죠?" 하는 아이들이 있어 다행이다.

25명 중에 13명 정도는 그래도 밥을 잘 먹는 것 같다.

급식을 먹고 나면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거의 5교시 시작할 시간이 되어 있다.

급식 이후에는 아이들 집중력이 많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음악이나 체육, 창체 같은 과목들을 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급식 먹으러 가기 전에 알림장을 쓰는 경우도 있고 마지막 교시 마칠 때 쓰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글씨를 너무 대충써서 알림장 검사를 꼭 하고 글씨 검사를 한다. 잘 쓴 아이들은 칭찬 막대를 주는데 4학년이지만 막대를 받고 싶어 글씨를 예쁘게 써오려고 노력한다. 한 5명 정도는 그냥 포기하고 대충 써오기도 하는데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에 나는 칭찬을 많이 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 했으면'하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벌써부터 대충 대충 하려고 하면 앞으로 모든 일을 대충 하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

많은 아이들이 따라주니 다행이긴 한데 알림장은 예쁘게 써오지만 수업 시간에 교과서 글씨는 대충 쓰기도 하다. 

매번 모든 일에 정성을 다했으면 하는 것은 어쩜 나의 지나친 바램일지도 모르겠다.


인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집에 가고 나면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간 듯 기운이 없다.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가르치고 상담하고 이런저런 지도를 하는 게 굉장히 에너지 소모가 큰 일임에 틀림없다.

오후 시간은 업무가 있으면 업무를 보고 대개는 수업 준비를 한다.

나는 임기응변에 약한 사람이라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교수학습사이트에서 좋은 자료를 찾고 수정하고 저장하고 수첩에 내일 할 일을 기록해 놓고...

시간이 남으면 책도 읽고 청소도 하고 앉아서 쉬기도 하고...영어 공부도 하고...

연구실에 가서 복사를 하거나 차를 한잔 마시기도 하고...


이렇게 적고보니 그래도 내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정말 많고 내가 그에 따라가지 못해서, 또 아이들이 나를 너무 속상하게 해서 내가 잘하고 있는건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많지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방학이 정말 필요하다. 충전이 필요한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