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기 싫은 주말, 냉장고 파먹기
이야기
냉장고는 마법의 힘을 갖는다.
내가 정성스레 포장해 넣어둔 ‘설렘’과 ‘기대’는 어쩐 일인지 얼마 후 ‘귀찮음’으로 둔갑해 있다.
하루 이틀 요리를 미우다 결국에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을 볼 때면 지난날의 ‘들뜸’을 반성하고 다짐한다.
... 내가 요리는 무슨 요리, 배달 음식이나 먹자.
자조 섞인 한숨으로 배달 음식 타령을 하다가 문득 새해 결심 중 하나가 떠오른다. 집밥 해 먹기 말이다.
“자기야, 나 건강한 집밥 해 먹을래. 그러니까 자기도 마트 가서 햄이니 소세지니 그만 사와!”
어쭈? 하는 의심과 호기심으로 나를 보는 신랑의 눈을 피해 냉장고를 열었다.
역시나 오늘도 썩어가는 재료가 있다.
양배추와 당근. 계란이랑 식빵도 있으니 그렇다면...
“내가 길거리 토스트 해줄게.”
재료(2인분)
식빵 4장
양배추 1/8통
당근 1/3개
계란 3개
설탕, 케첩, 버터
보시다시피 양배추와 당근의 상태가 심히 메롱이다.
레시피
1. 양배추와 당근은 채를 썰어준다.
양배추는 채를 썰고 나서 손으로 집었을 때 적당히 두 주먹 정도 넣어준다.
당근은 취향에 따라 넣되 많이 넣으면 너무 달 수 있으니 고것만 기억하자. 1/3개 넣었다.
2. 채 썬 양배추, 당근과 계란을 넣고 섞어준다.
3. 이제 가장 중요한 굽는 일만 남았다.
기왕 집밥인데 마가린보다는 버터, 가공 버터가 아닌 진짜 버터로 하자.
참고로 한국 마트에서 파는 대부분의 버터는 가공 버터이니 ‘서울우유 프레시 버터’를 사시길. (이거 빼고 다 가공버터다. 무서운 현실)
온라인에서 그보다 싸고 질 좋은 수입 버터를 산다면 더 좋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뉴질랜드산 앵커 버터 추천!(내돈내산이다...)
버터 하나를 넣고 열이 적절하게 오르게 기다려준다.
프라이팬에 열이 올라왔을 때 식빵을 넣어준다.
요리 초보자는 열이 오르지도 않았을 때 급하게 식빵을 투하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구워지기보다는 버터를 그대로 흡수한 식빵.
하지만 반전은...
계속 뒤집으면서 구워주면 어느새 머금은 버터를 내뿜으며 맛있게 구워진다.
삼겹살이 아니니 뒤집는 것에 인색하지 말자.
계속 뒤집으며 구워주니 점점 노릇하고 바삭한 겉면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이번에는 계란이다.
적당량을 넣고 계란 모양을 잡아준다.
토스트에 들어가는 계란은 밀가루 같은 전분이 없어서 뒤집는 과정에 흐트러지기 쉽다.
뒤집기 전 충분히 익었는지 확인하고 뒤집자.
안 그러면 다 흐트러진다.
다행히 뒤집기 성공했다.
잘 구워졌다.
4. 식빵 위에 잘 구워진 계란을 올려준다.
5. 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려준다.
솔직히 집밥을 하면서 설탕을 넣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넣어봤다. 길거리 토스트에서 설탕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나는 넣는 것을 추천한다.
(시식을 해보니 순전히 설탕이 살리는 맛이더라.)
6. 그 위에 케첩을 뿌린다.
7. 완성
너무 맛있었던 길거리 토스트였다.
내가 처음 한 길거리 토스트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하마터면 쓰레기통으로 갈 뻔한 양배추와 당근이 이리 환골탈태를 한 것에 놀랐고, 큰 울림이 있던 깨달음은 덤이었다.
냉장고가 부리던 엄청난 마법은 사실 내 게으름이 불러낸 비극이었나니...
힘들겠지만 조금만 부지런해져야겠다.
나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