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도 습관이다
아침에 일어나 에스프레소 기계를 켠다. 물을 주전자에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물이 끓을 동안 기계는 예열 한 번. 커피가루를 포트에 가득 담아 기계에 끼고 추출 버튼을 누른다. 시계와 추출되는 커피색을 번갈아 보며 대충 가늠하고 버튼을 끈다. 짧은 30초 동안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함께 기분 좋은 커피 향이 작은 부엌에 퍼진다. 살포시 고개를 기울여 컵 안을 들여다보면 기대한 대로 폭신하고 쫀쫀하고 통통 튀는 듯한 이쁜 크레마가 자리 잡아 있다. 그쯤 알맞게 끓은 물을 살포시 크레마 모양이 망가지지 않도록 컵 안쪽으로 살살 붓는다. 우리 집 홈메이드 아메리카노는 이렇게 완성된다. 맛도 웬만한 카페에서 파는 커피보다 더 낫다.
커피와 같이 먹을 빵도 준비한다. 집 근처에 식빵 잘 굽기로 유명한 제과점에서 자르지 않은 통식빵을 서너 개 사놓는다. 빵을 다 먹을 때마다 여러 번 가는 것도 성가신 일이니 한 번 갈 때 서너 개 사재기는 기본이다. 이렇게 사재기해서 오면 그 자리에서 따뜻한 통식빵 하나를 바로 꺼내 손으로 쭉쭉 찢어 먹어주고, 나머지 사재기품들은 적당히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금 두툼하게 잘라 하나씩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먹을 때마다 하나씩 꺼내서 얼어있는 채로 토스트기에 구워내면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해, 한 마디로 일품이다.
이렇게 커피와 빵을 두고 남편과 아침을 맞이한다.
습관이 되어버린 셀렘이란 감정
일종의 의식 같은 나의 아침 루틴은 결혼을 하고 생긴 습관 중 하나이다.
결혼을 하고 처음 남편과 같이 살면서 소꿉놀이하듯 아침을 챙겼고 그 바람에 출근 준비 시간이 30분 정도 늘어났다. 그렇게 아침마다 얼굴을 마주하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10분 남짓. 많이 짧은 시간이고 많이 아쉬운 시간이다. 신혼 때는 그러고 있으면 정말 어찌나 회사에 가기 싫던지. 그래서 여유 있는 아침을 즐길 수 있는 주말이 무척 기다려지곤 했다.
커피부터 빵까지 준비하는 이 루틴은 몸으로만 습관이 된 게 아니었다. 바로 내 감정까지도 습관을 들여버렸다.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고 빵을 데우고 있으면 서서히 감정이 살아난다. 설레기 시작한다.
신혼 때 아침마다 새로운 환경에 얼떨떨하며 자꾸 설레던 그 오묘했던 감정을 품고 아침을 준비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반대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으면 저절로 설레는 감정이 살아나 고스란히 느껴졌다. 신혼 시절, 그때 느꼈던 커피 향과 빵의 버터향 그리고 설렘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신기하게도 전날 지독하게 싸우고 잠자리에 들었어도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저항할 틈도 없이 이내 남편에게 퍼부었던 어제의 독설은 머리에서 지워지고 가슴에 따뜻한 감정의 씨앗이 발아되었다. 거기에 따뜻한 커피까지 몸으로 들어가니. 하... 서로에 대한 긴장은 풀어지고 그냥 어색하게 웃고는 빵을 한입 베어 문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의 삶이 일정한 형태를 띠는 한 우리 삶은 습관 덩어리일 뿐이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몸에 익숙한 습관대로 행동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할지, 물 한잔 마시고 스트레칭을 할지는 우리가 고민을 하고 매일매일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그냥 몸에 배어버린 습관이다.
나는 감정 또한 습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감정을 습관이라고 인지하지 못한 채 일상의 단편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감정을 통제하려 하고 실패하고 만다. 나도 하려고 해봤지만 감정 통제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스무 살 처음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처음 남자 친구라는 게 생기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계속 그대와 같이 있고 싶고, 붙어 있고 싶고, 옆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연애감정에 서툴던 어린 나는 어느새 상대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남자친구를 내 감정받이로 쓰고 있었다. 감정이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다 보니 감정노동 수준이 되었고 연애가 고된 일로만 느껴졌다. 그 기억 때문일까. 나는 그 후 연애를 몇 년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다시 연애를 시작하면서 결심했던 것은 상대가 너무 편해져서 또다시 내 감정대로 짜증내고 화를 내는 일만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내 감정이 아니라 내 행동을 통제해야 했다. '화를 내지 말자'가 아니라 말을 예의를 갖춰서 하는 것으로, '짜증 내지 말자'가 아니라 짜증 나고 힘들면 전화통화를 하지 않고, 카톡으로 용건만 간단히 전달하기로. 이쯤 되자 어릴 적 아픈 기억에 마냥 피하기만 했던 연애는 더 이상 '감정노동'이 아니라 '감정교류'가 되어 있었다. 감정은 자연스럽게 통제되었고, 상대의 감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나쁜 감정이 생기는 행동을 하지 않는 연습에서 더 나아가기로 했다. 좋은 감정이 생기는 행동을 내 습관으로 만드는 연습 말이다. 아침 출근길에 좋은 하루 보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저녁에 일기를 쓸 때면 남자친구에게도 편지를 써놓았다. 이런 습관들은 그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좋은 감정까지도 습관처럼 내 삶에 한 부분이 되어있었다.
결혼 생활에서 신혼은 영원할 수 없다. 점점 익숙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안 그래도 반복되는 일상이 '결혼'이라는 생활형태로 인해 더 쳇바퀴처럼 보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결혼 생활에서 '감정 습관'은 더 중요하다. 신혼 때 설렘이 느껴지고 웃음이 얼굴에 번질 수 있는 그런 습관 말이다.
우리 부부는 벌써 5년 차.
신혼하고 거리가 먼 오래된 부부이지만 커피를 내리고 빵을 차리는 아침만큼은 신혼 때 기분이 난다. 정말로.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아침은 기운이 난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