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부엌 소리, 친정에서 부엌 소리
달그락달그락. 쏴.
새벽녘 시어머니의 아침 준비 소리.
난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잔다. 내 옆에 누워서 잘게 코를 골고 있는 내 남편처럼. 만약 내가 잠귀가 밝아 그 소리를 들었어도 난 방 안에서 깬 채로 그냥 누워있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신다. '뭐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으면 "괜찮다"라고 "집처럼 푹 쉬다 가라"라고 하시는 분이다. 남편을 만나 경상도화법이 있다고 배웠지만 어머니의 이 말만큼은 그냥 곧이곧대로 듣는다. 네 쉬다 갈게요 어머니.
날라리 며느리
그래도 마음이 참 불편하다. 쉬라고 해서 쉬고는 있지만 부엌에서 이 집 하인처럼 일만 하시는 어머니를 두고 내가 정말 방 안에서 다리 뻗고 앉아있어도 되는 건가 싶다. 그래서 시댁에 내려가면 점심을 먹고 남편이랑 집에서 나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우다 저녁쯤 들어간다. 누가 보면 난 날라리 며느리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할까. 그냥 이 모습이 정상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왜 없을까. 우리 엄마만 나에게 웃으며 건성으로 말한다. "그래도 좀 도와드려."
그냥 이서방
남편은 그냥 이서방이다. 날라리가 아니다. 처가댁에 가서 엉덩이 붙이고 거실 소파에 앉아만 있는데 누구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 남편도 눈치를 보지 않는다. 사실 집에서 집안일을 더 하는 사람은 남편이고, 나보다 더 부엌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도 처가댁만 가면 남편 자리는 거실 소파다. 우리 엄마가 부엌에서 밥을 차릴 준비를 하면 밥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지, 가서 도와드려야 하는지 아님 그냥 있을지 번뇌를 할 필요가 없다. 고개를 두리번거릴 필요 없이 그냥 티브이에 고정한 채로. 남편의 부모 앞에서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나와 달리 아내의 부모 앞에서 남편은 쉬는 게 쉬는 거다.
남의 집 귀한 딸이 우리집 부엌에 있다
남편과 같은 공간 같은 소리에 반응하는 건 우리집 며느리 윤희다. 윤희는 우리집에 들어와 가방을 놓고 인사를 하고는 부엌으로 향한다.
"어머니, 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세요. 힘드셨겠다." 다정한 말투와 함께.
우리 엄마는 내 시어머니처럼 윤희에게 '괜찮아 쉬고 있어'라는 말을 하시지 않는 분이다. 나에게는 건성으로 "시어머니 좀 도와 드려라" 하시지만 윤희에게는 건성으로라도 "가서 쉬고 있어라" 하시지 않는다. 내가 집안일을 싫어하고 게으른 건 엄마를 닮았다. 그 싫은 걸 아이들 온다고 준비하고 있으니 윤희가 와서 음식 담고, 수저 놓고, 설거지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보는 분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부엌에 엄마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아빠도 있고, 내동생도 윤희와 같이 있다는 것. 나 빼고 우리집은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부엌일을 잘했다. 그래도 남의 집 귀한 딸이 우리 가족과 부엌에 있다. 이 광경이 언짢다. 남일 같지 않다.
여기서도 나는 날라리다
우리 내외, 동생 내외랑 조카 둘 먹이겠다고 전날부터 이것저것 장을 봐 아침부터 일하고 있는 엄마도 불쌍하고 그 옆을 당연하게 지키는 윤희도 불쌍하다. 이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져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윤희에게 좋은 시누이 흉내 낸답시고 쉬라고 한다면 엄마가 서운할 것이고, 윤희에게 가서 일하라고 날세운다면 내가 사람이길 포기한다는 것이고. "너도 와서 좀 도와!"라는 앙칼진 엄마의 짜증에 귀 막고 티브이만 볼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여기서도 나는 날라리다.
나는 아마 계속 날라리가 될 것 같다.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눈치 보여 시댁 부엌에 출입하다가는 얼마 안 가 "시댁에 당신 혼자 다녀와" 할 것같다. 난 날라리이기도 하지만 좀 삐딱하기도 하다. 난 오래오래 시부모님을 뵙고 싶다.(정말이지?)
그래서 난 더 꼿꼿하게 앉아 티브이를 본다.
당당하게 시어머니 밥 받아먹을 시간을 기다리면서.
내 남편이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