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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신세라 Nov 17. 2019

오늘 뭐 먹지?

우리는 결국 먹으려고 사는구나

결혼 전 회사 선배들이 하는 말 중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하나 있었다.

"난 집에서 요리 하나도 안 해."

아니 그럼 뭐 먹고살아?

한창 클 아이들이 있는 분들이 밥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집 애들은 뭐 먹고 살까. 엄마 밥 먹으며 회사를 다니던 나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매일 따신 밥에 반찬에 그렇게 먹어야 사람이 살지, 밥심으로 살지!

그런 내 과거를 후회한다. 그분들께 용서를 구한다. 요리는 할 수 없다. 애초에 일을 하면서 따신 밥까지 해 먹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시달리다 늦게 퇴근을 하면 집에서 쉬는 게 맞지, 어떻게 또 밥을 할 수가 있나. 사람에게는 총량이 있는 법이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

만능 간장이 만능은 아니었다.

처음 결혼을 하고 나는 의욕이 앞섰다. 우리 동네 유기농 마트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아보았다. 엄마가 다니던 유기농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되는 레시피를 찾아 요리를 하려고 했다. 내가 결혼했던 때가 또 백종원 아저씨가 집밥을 한다며 티브이에 처음 나오던 시절이었다. 여기저기 집밥 바람이 불고, 여기저기 '만능 간장'을 만들던 때였다. 나도 그 유명한 '만능 간장'을 만들겠다며 돼지고기 간 것을 처음 사봤다. 만들어 놓기는 했는데 만능은 아니었다. 조림 요리에 쓰는 건데 둘이 살면서 그렇게 많은 양의 간장은 필요 없었다. 만들어 놓고 몇 달 후에도 줄지 않은 만능 간장은 결국... 음식물 쓰레기통행이었다.

한 번은 나물을 처음 해봤는데 콩나물 무침이었다. 콩나물을 씻고, 데치고, 양념하는데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퇴근하고 힘들게 내놓은 저녁상에 흰밥이랑 콩나물 무침밖에 없을 때 느꼈던 그 허탈함이란. 그때 흰밥 위에 콩나물 무침을 얹어 큰 입 벌리며 결심했다. 요리하지 않기로. 그냥 심플하게 먹기로. 그 뒤 나는 생두부를 썰어 김치랑 먹는 걸로 당분간의 저녁상을 해결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남편이 자취 시절 내공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거 먹는다고 안 죽는다.

남편은 서울 생활 17년에 달하는 자취 내공자다. 엄마 밥 먹던 세월과 타지 밥 먹던 세월이 거의 같았다. 요리에 소질은 없었지만 살림에는 소질이 있었다. 그 바람에 유기농 식품, 브로콜리, 파프리카, 유정란이 담기던 장바구니에는 햇반, 찌개 반조리품, 제일 싼 아무 계란으로 품목이 바뀌어 담기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마다 남편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물만 붓고 두부만 넣으면 되는 된장찌개 반조리 식품 맛이 멸치 육수에 된장 풀어 끓여낸 홈메이드 보다 더 맛있다는 걸 거부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편하기까지 하니... '그래 이거 먹는다고 안 죽는다. 이게 최선이다.' 처음 느꼈던 죄책감은 이제 상당히 무뎌졌다.

우리는 먹으려고 사는구나. 인생 별거 없구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부엌에 서서 한 시간 넘게 꼬박 일을 해야 하는데 밥을 먹는 건 20분이면 끝이다. 그러고 나면 쌓인 설거지가 또 기다리고 있다. 퇴근해 내가 남편을 기다리며 식사 준비를 하고 남편은 설거지와 뒷정리를 맡고 있다.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다 이제야 얼굴을 보는데 밥 먹고 나면 이제 자야 할 시간이니 처음에는 이게 결혼인가, 무슨 결혼이 먹고사는 문제에 매몰되어 버리나 싶었다. 주말에는 늦은 아침을 빵과 커피로 때우고 나면 얼마 안 가 점심을 먹어야 하고, 또 얼마 안 가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아, 그렇구나. 우리는 먹으려고 사는구나. 인생 별거 없구나. 한 차원 해탈한 기분이다.

유정란 아니면 안 먹겠다며 마트에서 남편과 실랑이 부리던 집밥순이는 이제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운 계란을 고르면서 무항생제 문구에 '이만하면 됐지' 하는, 상품 비교도 귀찮은 주부다. 반조리 찌개도 과하다. 재료 손질에 설거지며 뒷정리하느라 남편과 얼굴 맞댈 시간 줄어들까 차라리 배달앱을 뒤적인다. 아무리 우리가 먹으려고 산다지만 그러다 결혼까지 별거 없다 생각할라.

오늘 뭐 먹지?

평생 집밥 먹여주던 엄마 생각이 참 많이 난다. 점심 다 먹고 치우지도 않은 식탁에 앉아 멍하니 허공에 대고 되뇌던 '저녁에 뭐 먹지?' 그 대답은 않고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밥 먹을 생각을 하냐며 무심히 일어났던 나. 엄마가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던 건 몇 시간 쏟아부은 한 상이 끝남에 서운함이고 다시 쏟아부을 몇 시간에 한숨이 아니었을까. 이제 나는 허공에 대고 되뇐다. 오늘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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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라 소속 직업 회사원

7년차 딩크 | 회사원 | Sincera 스페인어로 성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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