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추억 타령, 그래도 추억 타령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부터 잘 가던 브런치 카페가 하나 있다. 브런치 카페답게 커피랑 케이크 말고도 피자와 파스타도 파는 곳이었다. 꽤 인기가 있는 곳이었는데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꽤 괜찮은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말 점심에 특가로 한 사람당 1.1만 원이면 피자나 파스타 등 주요리 하나와 커피를 세트로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피자가 고르곤졸라니 마르게리따니 상관없었고, 파스타도 오일 파스타니 크림이니, 해산물이니 쉬림프니 상관없었다. 단품으로도 1.2만 원~1.4만 원 정도 했으니 요즘 이탈리안 음식점 가격에 비해 저렴한 편이기도 했고 여기에 커피까지 주는 세트메뉴이니 1.1만 원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가격이었다. 데이트할 때 가성비가 제일 중요했던 우리에게 그 카페는 아지트였다.
우리는 결혼을 하고도 종종 주말에 일찍 집을 나서 점심을 먹으러 가곤 했다. 연애하던 시절 단골집이라 그런지 가끔 가면 연애시절이 생각나 피식 웃음도 나는 곳이기도 했지만 음식 앞에 두고 주변 아랑곳없이 눈 흘기고 싸웠던 곳도 거기였기에 이런저런 추억들이 서린 곳이었다. 카페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점심 세트'를 먹고 있노라면 기분 좋은 햇살이 카페 안으로 기분 좋게 비춘다. 파스타 한 입 크게 넣고 오물오물 거리며 고개를 기울여 창을 보고 있으면 집안일, 회사일을 반복하며 찌들어 버린 묵은 감정이 뽀송해지는 기분이다.
너무 저렴했던 게 독이었을까.
그날도 주말에 데이트 기분 내자며 갔더니만 인테리어가 모두 바뀌어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내 사랑 '점심 세트'가 없어졌다! 정확하게는 메뉴가 개편되었는데 가격을 올리고 샐러드가 기본 메뉴로 포함되어 버렸다. 인테리어가 바뀌어서 그런가 아니면 오른 가격으로 먹는 게 억울해서였을까. 옛 기분도 나지 않고, 평소 안 먹는 풀까지 돈 내고 먹으려니 이어 나온 파스타랑 피자도 맛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의 추억나들이는 마지막이었다. 뭐 그래도 어쨌든 추억의 장소가 있으니 언제고 가지 않겠나 했는데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그 가게가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나만 새로운 점심 특선이 맘에 들지 않은 게 아닌가 보다. 요즘도 자주 그 앞을 남편과 지나는데 감성 가득했던 그 장소가 고급 횟집으로 둔갑된 것을 보고 씁쓸하게 웃는다. 내가 가지 않겠다고 그곳이 변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렇게 아쉽지 않았는데 이제 아예 갈 수 없는 곳이 되니 내 추억까지 모두 사라져 버린 기분이다.
사진 몇 장이 조금이나마 그곳을 기억하게 해 준다.
얼마 전 남편 생일에 첫 데이트 때 갔던 술집에 다시 가보았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 덧없게 느껴져 이러다 정말 서로 생일도 안 챙기는 비정한 사이가 될까 겁이나 급하게 세운 계획이었다. 공식적인 데이트는 아니었고 남편이 나한테 작업을 걸던 때 갔던 곳이다. 2차로 간 곳이라 사실 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날 3차도 갔는데 한강공원에 앉아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까며 밤새 이야기하며 새벽 맞은 것은 기억난다. 추억 타령하려면 한강에 갈 걸 그랬나. 남편 생일이 가을이라 추워서 안된다. 어쨌든 추억의 장소라고 간 곳인데 기억력 감퇴로 '추억할 추억이 없는 추억의 장소'에서 그냥 새로운 추억만 만들고 왔다.
사라진 추억의 장소와 추억이 생각나지 않았던 추억의 장소.
한 곳은 사라져 버린 공간에 기억만 남아 아쉽고, 다른 한 곳은 사라져 버린 기억에 공간만 남아 아쉽다. 결혼하고 많은 추억을 만들었지만 결혼 생활에서 만든 추억은 아득하고 손에 잡힐 듯 안 잡히는 추억이 아니라 어제로, 예전으로, 그때로, 치부되는 일상이라고 느끼는 듯하다. 그리고는 자꾸 연애 시절 추억만 간직하려 한다. 지난 남편 생일에 기억이 없던 추억의 공간에 새로운 추억을 넣고 왔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또다시 예전 브런치 카페 사진을 뒤적이고 있다.
그놈의 추억 타령, 그래도 추억 타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