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세라 Nov 15. 2019

시스터 인 로(sister-in-law)

법으로 만난 사이

윤희는 내 동생의 와이프다.

한마디로 올케다.

난 한 번도 윤희를 올케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윤희도 나를 형님이라고 불러본 적 없다.

나는 윤희의 이름을 부르고, 윤희는 나를 언니라고 부른다.

그래서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첫 조카가 태어났는데 윤희가 나랑 이야기하다가 자기 아기에게 나를 가리키며 "이모야 이모"라고. 물론, 지금은 고모라는 제대로 된 호칭을 쓰지만, 그땐 경황도 없고 평소 언니라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모라는 말이 나왔던 거다.


처음부터 호칭이 그러다 보니 올케라는 단어가 너무 낯설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남들한테 윤희 이야기를 할 때가 제일 곤란하다.

그때마다 "어..." 하면서 한참 생각하고는 유레카를 외치듯, "아, 올케, 올케"라고 한다.

사실 저 위에 올케라는 단어를 타이핑 칠 때도 어... 하다 썼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에 의하면 올케라는 말은 '오라범댁'과 같은 말이라고 쓰여 있다. 남편의 형제를 도련님, 아가씨라고 높여 부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뉘앙스다.


2017년 국립국어원이 10대~60대를 대상으로 언어실태 조사를 실시했는데 해당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중 65.8%는 남편의 남동생과 여동생을 지칭하는 도련님, 아가씨 등의 호칭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에 여성가족부가 국민들 여론을 수렴해 제안한 호칭은 배우자의 손아래 동기는 이름을 부르거나 이름 뒤에 씨를 붙이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 쪽으로 누님이 한분 계셔서 도련님이나 아가씨의 표현을 쓸 기회가 없었지만 만약 남편에게 동생들이 있어 그 호칭을 써야 했다면 아마 호칭 없이 말하다 나중에는 어색해서 아예 말을 안 했을 거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남존여비 사상이 담긴 호칭 표현은 '지켜야 할 전통'이라 하기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가족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조차 막아버리는 '고쳐야 하는 관습'이라고 본다.


영어 단어 중 'OOO-in-law'라는 표현이 있다.

상대에 따라 mother-in-law, father-in-law, sister-in-law, brother-in-law라고 부른다.

단어에서 풍기는 쿨함이 매력적이지 않은가.

사실 이 표현도 남에게 관계를 설명할 때나 쓰는 표현에 불가할 뿐, 실제로는 서로 이름을 부른다. 그들은 서로에게 내가 모셔야 하거나 또는 섬김을 받아야 하는 불편한 관계가 아니다.

말 그대로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인 법적인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 누나, 남동생, 형일뿐이다.

우리는 도련님, 아가씨, 형님 하며 자연스럽게 말이 공손해진다. 처제, 처남, 올케 하면서 말이 편해진다.

언어는 사고와 문화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고와 문화를 결정하기도 한다.



언어는 사고와 문화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고와 문화를 결정하기도 한다.



배우자의 가족들은 아무래도 불편하고 어려운 상대이다. 만약 성격이 안 맞거나 자기 집 자식만 귀하게 여긴다면 답 없다. 웬만하면 왕래를 덜하는 게 답이다. 결국 왕래가 점점 뜸하면 손해 나는 건 젊은 사람들일까, 아님 점점 늙어가는 우리 부모들일까. 자식들 눈치 보라는 게 아니라 서로서로 쿨하게 지킬 선은 지키자는 것이다.


그 지킬 선이라는 게...

부모들은 남의 집 귀한 자식도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고, 자식들은 남의 부모도 자기 부모처럼 생각하고?

글쎄, 말이 쉽지 이건 불가능한 주문이다. 자기 부모처럼 자기 자식처럼 생각한다? 부모-자식 간은 애증 관계인데 다른 부모와 자식 간에 애(愛)는 어떻게 흉내 낸다 해도 증(憎)은? 괜히 흉내 냈다가 패륜될라.

그래서 힘들다. 또, 그래서 지켜야 한다. 그 선을...

나는 쿨한 인간관계를 목표로 둔다. 친절하되 감정은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난 아직도 윤희 연락처를 모른다. 카톡으로만 연락한다. 자주 연락하고 친한 언니처럼 지내는 것도 좋지만, 내가 친한 언니 흉내 낸다고 밥 사 준다 나오라 하거나 자주 전화해 안부를 묻는다고 윤희가 날 언니처럼 생각할까, 아님 부담스러운 연락 자주 하는 시누이로 생각할까.

정 없다고도 하겠지만 정은 카톡으로 주고받는 이모티콘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윤희에게는.


남편과는 뜨겁게 사랑하되, 법적인 가족들(in-law)과는 쿨하게.

그게 최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 파스타는 맛있었다, 진짜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