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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Nov 17. 2019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저절로 얻을 수 없다

24시간이 충분해


유명한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피비는 남자친구에게 동거를 하자는 프러포즈를 받는다. 평소 남자와 함께 사는 것을 생각해본 적 없던 피비는 고민 끝에 사랑을 믿고 동거를 시작한다. 첫날밤을 보내고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한 커플은 침대에서 포근하고 낭만적인 아침을 맞이한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덤이었다. 하지만 지저귐도 잠시, 남자친구는 침대맡에 있는 권총으로 시끄러운 새들을 쏘고 다시 낭만에 빠지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피비는 폭력적인 남자친구를 허용할 수 없었다. 열렬히 사랑했지만 그들의 동거가 끝나는 데는 24시간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연습 없이 산다. 

우리 사회는 아무리 성인이 되었어도 결혼을 하기 전까지 미성년으로 간주하는 문화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는커녕 친구와 함께 살아볼 기회도 없이 결혼을 한다. 학교나 직장 문제로 집을 나와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친구와 살아본 사람이라면 함께 누구와 같이 산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배려하며 살면 되지 않냐고 한다면 모르는 소리다. 

이론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만약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데 누구는 냉동실에 넣어 보관하다 한꺼번에 버리는 게 맞다고 하고 누구는 매일 버리는 게 맞다고 한다면, 누구는 아침을 안 먹는데 누구는 아침을 안 먹으면 죽는다며 본인뿐 아니라 남까지 바꾸려 한다면, <프렌즈>처럼 누구에게는 음악인 새소리가 누구에게는 소음인 상황이라면 우리는 매일매일, 아니 매 초마다 맞닥뜨리는 문제에 폭발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 후로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전설

결혼식을 마치자 잠시 환각상태에 있다 깨어난 것처럼 현실 속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화려한 드레스와 장식들을 하나씩 벗고 화장을 지우자 얼굴에 드러나는 잡티들이 더욱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결혼식장은 조용했고 차가운 사무실 소파에 앉아 그날 잔치를 정산하면서 내가 오늘 결혼한 것이 맞나 어안이 벙벙해졌다. 모두 빠져나간 웨딩홀에서 나는 계속 예쁘게 차리고 그 후로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속 결말처럼 계속 웃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항공 스케줄대로 공항에 가고 있지만 그 스케줄마저 끝났을 때 나는 어떻게 행복해야 할지 약간 어지럽기 시작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 중>

신혼생활은 달콤했다. 행복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있어서 좋았던 건지 아님 생전 처음 부모를 떠나 나 중심으로 새 터전을 만들어서 들떴던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분명하다. 한 몇 달은 하늘에 걸린 연에 내 어깨가 걸려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냥 저절로 행복했다, 그때는. 나 좋다고 쫓아다니던 남편에게 못생겨서 싫다고 애먹여놓고는 결혼해서 남편을 다시 보니 잘생겨 보이기까지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하지만 테이블을 방에 놓네 베란다에 놓네를 놓고 목놓아 울며 이 고집쟁이야 너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외치며 주저앉아 서럽게 울면서 행복한 결혼생활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깟 테이블 위치 때문에 난 불행했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해야 한다.

이제 결혼 5년 차. 우리는 아직도 연습 중이다. 

답은 없다. 그냥 내식대로 살고 있다. 세상 부럽던 연예인 부부들의 이별 소식에 악 소리 내고 놀라면서도 그래, 내가 살아보니까 이거 만만한 거 아니더라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내식대로 살고 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동화 속 결말의 뒷이야기를 내식대로 살면서 뭐가 맞는지 뭐가 틀린 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주말에 내가 이 글을 쓰겠다고 방에 콕 박혀있어도 이제는 서운해하지 않고 자기 할 거 하는 남편과 이제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다. 

톨스토이는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다고 했지만 살아보니 행복은 그리 비슷해보이지 않았고 노력해야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저마다의 고민과 노력대로 저마다의 행복이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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