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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Nov 17. 2019

보통의 주말

따릉이, 드라이브, 산책 그리고 방콕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긴장한다. 날씨만 좋으면 나가자는 남편 성화 통에 나가지 못할 핑계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아니, 뭐 개XX도 아니고 날씨만 좋으면 나가자고 졸라 이씨. 

미세먼지 있으면 나가지도 못한다고, 나가서 맛있는 거 먹자고, 좋은 디저트 가게 알아놨다고 이런저런 말로 날 구슬리기 시작하면 나도 두 손 두 발 들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나는 날씨가 좋든 말든 집에서 나 혼자 잘 놀 수 있는데, 이 남자는 집에 있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결혼 전에 분명 나에게 집돌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너를 보니 나는 진정한 집돌이가 아니었다"라며 난데없는 자신의 정체성 찾기를 하고 있다. 주말에 집 밖은 위험하다고 배웠는데 주말 내내 집에만 있었다고 우울해할 남편을 보기 싫어서라도 나간다. 둘뿐이 없는 공간에서 남편이 우울하면 나도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주말에 나가서 하는 거는 특별한 게 없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들어오면 하루가 끝난다. 생각해보면 돈 쓰러 다닌다. 괜히 집에서 밥 안 먹고 외식하고, 괜히 집에서 커피 안 마시고 외식하고. 우리나라 휴일이 많아지면 경제 잘 돌아갈 것 같다. 주말에만 돈을 쓰니. 



내 사랑 따릉이

그래도 우리 부부가 같이 좋아하는 게 있다. 바로 한강 자전거 타기다. 자전거는 따로 없고 서울시에서 대여해주는 따릉이를 이용한다. 단돈 천 원이면 1시간씩 여러 번 하루 종일 탈 수 있으니 이만한 여가생활이 없다. 우리는 늘 가는 루트도 정해져 있다. 여의도 부근에서 따릉이를 타고 잠수교까지 가면 한 시간이 좀 안된다. 근처 따릉이 대여소에 반납을 하고 바로 다시 빌려서 잠수교를 건너 새빛섬으로 간다. 새빛섬에 따로 대여소가 없어 잠수교 하나 건너자고 두 번째 대여를 하는 것이다. 새빛섬 편의점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면 또 한 시간. 다시 아까 그 두 번째 대여소에 따릉이를 반납한 뒤 바로 다시 빌려 한 시간 동안 한강을 가르며 돌아오는 식이다. 날씨가 정말 좋고 맥주가 당기면 잠수교를 걸어 통닭과 맥주 한 캔 하기도 한다. 한강에서 마시는 맥주는 역시 누구랑도 맛있다.

... 그래 까짓, 남편이랑 더 맛있다!



기분 좋은 드라이브

자전거를 탈 수 없거나 멀리 교외로 나들이를 가고 싶을 때 드라이브를 한다. 커피 하나 마시자고 저 멀리 양평까지 가기도 하고, 순두부 하나 먹겠다고 저 멀리 파주까지 가는 식이다. 집 근처에 커피도 순두부 가게도 있는데 구태여 그 멀리 간다. 기분 좋게 달리고 싶어서다. 특히 파주를 갈 때 자유로를 타고 가는 그 길을 참 좋아하는데 시간 잘 맞춰오면 한강 너머 해가 떨어지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아 저기가 북한이란 말이야 갑분싸 분단의 현실도 실감하면서. 남편은 다행히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덕에 기분이 우울하거나 무료한 날들이 이어지면 드라이브를 하면서 기분을 풀 수 있다. 내 운전기사다.



그냥 산책

이것저것 다 귀찮고 날씨까지 좋으면 근처 산책을 나간다. 화장도 안 하고 옷도 레깅스에 헐렁한 티셔츠 걸치고 집 근처를 둘이 걷는다. 결혼 전, 가슴이 답답하고 한없이 우울함이 퍼져나갈 때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세상과 단절된 채 걷고 또 걸었다. 만약 그때 내가 걷지 않고 평소처럼 집에 박혀있었으면 아마 우울증을 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귀를 막을 일 없이 남편과 한 주동안 못한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다. 근데 서로 들으려고는 안 하고 말하려고만 해서 일방 대화가 될 때가 더 많다. 뭐 그리 서로 할 말이 많은지, 뭐 그리 서로 들으려 안 하는지 그러다 삐치면 걸음 속도를 올려 치고 나간다. 어라, 내가 더 빠르거든! 갑자기 경보 선수들이 되어 자존심을 세운다. 나이 먹으면 점점 자기 말만 한다는데 아직 우리는 듣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 



이도 저도 아닐 땐 방콕

한 달 생활비를 너무 많이 썼다 싶으면 그냥 집에 있는다. 밥은 그냥 김치볶음밥을 해 먹거나 배달시켜 먹고 꼭 마셔야 하는 커피는 직접 내려마시고. 주중에 못 본 밀린 다시 보기를 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지도 않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다. 남편은 우울해하지만 치맥으로 달래면서.


그나저나 이번 주말에 뭐하지? 미술관 공짜표 날짜가 언제까지 였더라. 거기나 다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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