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완벽한 결혼을 꿈꾸지만, 우리는 늘 서툴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진다
수민이는 내 오랜 친구다.
고등학교 시절 함께 공부하고,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며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봐왔다. 그러던 수민이가 하루는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가 서른 살, 뭐에 쫓기듯 부모님 소개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알려왔다.
야 너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남자 사귀고 있었냐? 언제 남자 생겼었어? 뭐? 너무 급한 거 아니야? 좋은 사람이지?
지금 생각하면 서른, 어린 나이인데 그때는 서른을 넘기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내 주변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을 하고 결혼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수민이는 원래 늘 연애를 잘하던 아이였는데, 그때는 유독 남자친구가 없을 때였다. 마침 몇 달 전 부모님 소개로 만난 사람과 만난 지 몇 달 안되어 결혼을 한다고 했다.
오래 만난다고 꼭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서른이란 나이는 오래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나와 맞는 사람인가 선별하기 어린 나이였다. 수민이는 결혼하고 세 해를 넘기지 못하고 갑자기 유학을 갔고, 유학 중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다. 유학이 헤어진 이유가 아니라, 남편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유학이었다.
내가 알던 수민이는 늘 자신감 넘치고, 밝고 당당한 아이였는데, 연애를 할 때도 망설임 없이 좋아하는 감정으로 시작하고 헤어지면 앞뒤 안 보고 슬퍼할 줄 아는 구김 없는 아이였는데, 지금 수민이는 남자를 무서워한다. 연애를 시작하기 어려워한다.
상우는 오래 알고 지낸 내 대학 후배다.
상우는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친구는 한국에 없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상우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여자친구를 만났고, 만나자마자 곧바로 장거리 연애를 하는 중이었다.
야 걔가 진짜 여자친구라고? 걔가 거기서 바람피우는지 어찌 알아? 너 바보니? 너 정말 여친 사랑하는구나.
지금이야 카톡도 있고 영상통화도 된다지만 TTL시절(이걸 알아듣는다면 우린 같은 세대) 메일로 주고받는 연애편지가 애정표현의 전부였다.
얼마 안 가겠지 했던 상우의 연애는 그 뒤 15년을 이어간다. 그렇게 장거리로 연애를 했는데 말이다. 내가 봐온 상우는 대학 시절, 그리고 취업을 해서도 그 여자친구와 플라토닉 사랑을 나누며 극도의 금욕 생활을 실천하고 있었다. 15년을 이어온 사랑은 결혼으로 결실을 맺었고, 1년도 되지 않아 이혼을 한다.
나에게 두 경우는 매번 충격이었다.
사랑에 자유롭던 수민이가 급하게 결혼을 서둘렀던 것도 그리고 남자의 폭력에 수민이는 도망치듯 남자와 헤어진 것도. 상우가 15년간 한국에 있지도 않은 여자친구만을 위해 젊음을 바쳤던 것도 그렇게 힘든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1년도 함께 하지 못했던 것도.
나는 미친놈, 나쁜년 하며 함께 아파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사정과 사유와 필요로 결혼을 한다.
우리는 서툴고 그래서 결혼은 늘 완벽할 수 없다.
연애에 서툴고 결혼은 남일로 치부하던 나. 주변에서 하나 둘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돌리면 나는 아직 어린데 그들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엄마를 비롯한 내 주변 '소위 나를 생각해준다는 사람들'은 나에게 너도 이제 남들처럼 저리 살라 등을 떠미는데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아니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사는 '정상적인 가족'은 내가 볼 때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결혼한다는데 내 주변 부부들은 서로 사랑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고 그들에게 아이는 버거운 짐 같았다.
우리는 각자의 사정으로, 각자의 사유로, 각자의 필요로 결혼을 한다. 각자의 사정과 사유와 필요가 서로 만났을 때 그 각자의 사정과 사유와 필요는 제각각 뛰논다. 이런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우리는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허상에 기대어 사랑하기에 결혼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서툴고, 그래서 결혼은 늘 완벽할 수 없다.
난 결혼을 했다. 내 사정과 사유와 필요가 있어 지금 남편의 사정과 사유와 필요에 의해 우리는 지금 함께 살고 있다. 퇴근을 일찍 한 사람은 곧 퇴근할 사람을 기다린다. 마침 기다리던 사람이 집에 오면 강아지 마냥 현관으로 뛰어가 서로 핥아주다가도 식사 준비를 하다 밥이 따뜻하지 않다고 가차 없이 짖어대는 그런 결혼 생활을 한다.
남들 눈에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보여도 내 사정 우리 사정이 있는 그런 결혼 생활을 한다. 결혼을 하고 한 가지 안 사실은 남녀가 평생 함께한다는 건 기적과 같다는 것이다. 그 많은 부부들은 그 기적을 해내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각자의 방식대로.
수민이와 상우는 지금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다. 오래 아파한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각자의 사정과 사유와 필요에 맞는 그런 좋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