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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없는 부부의 새해

앞으로 펼쳐질 20년대를 위하여 우리 모두 해피 뉴 이어

by 신세라

직구로 구입한 라디오를 지난 금요일 받았다.

요즘처럼 앱으로 다 되는 시대에 무슨 라디오냐고 신랑에게 구박 아닌 구박을 했지만, 예쁜 라디오를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 블랙프라이데이 리스트에 딱하나 담은 물건이었다.


새해가 별거 아니라고?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넌 죽는 게 나을 거야.

연말연초 괜히 몸만 바쁘게 지내고 새해 첫 월요일이 되어서야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었다. 새해인 만큼 새벽 5시에 일어나 폼을 잡고 쓰는데 어째 쓰는 내용은 새벽 결기와는 좀 다르게 흘러갔다.

대략 초안의 내용은 이랬다.

새해가 왔지만 예전과는 달리 별다른 감흥이 없다. 새해 다짐이나 계획도 세우지 않고 지나간다. 등등. 전체적인 글의 기조는 새해라고 뭐 별거 없네? 였다. 생각나는 대로 마구마구 양 많은 초안을 적었다. 기세 좋게 시작한 글쓰기는 기껏 한 시간이 지나니 슬슬 몸이 찌뿌둥했다. 딴짓에 한눈을 팔게 되었는데, 그래도 새벽에 일어난 보람은 있어야지 싶어서 양심상 <굿모닝팝스>를 들었다.

마침 그날 굿모닝팝스의 노래가 아바(ABBA)의 <Happy New Year>이었다.

아마 무슨 노래인지 모르더라도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하는 노래 구절을 들으면 아, 이 노래! 할 법한 한 번쯤 들어봤을 익숙한 노래다.

그날 굿모닝팝스에서 <Happy New Year>로 배우는 가사 구문은 이랬다.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해피 뉴 이어)

May we all have our hopes, our will to try (우리 모두가 노력할 희망과 의지를 갖게 되기를)

If we don't we might as well lay down and die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누워서 죽는 게 나을 거예요)


주.. 죽는 게 나을 거라고?

아름답고 경쾌한 선율로 기분 좋게 울리는 노래가 단순히 새해를 기원하는 노래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가사가 있었다니. 하필이면 새해 별거 없다며 축 쳐지는 글이나 쓰고 있는 나에게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근데 뭐... 뭐? 차라리 죽으라고?!

정말 벽두 새벽부터 숨이 탁 막히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허헛.

누워서 죽는 게 나을지 아닐지, 어쨌든 새해가 밝았다.



아이 없는 부부가 맞이하는 새해

우리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다. 딩크족은 아니지만 아이는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 없는 부부로 신랑과 맞이하는 다섯 번째 새해인 셈이다. 우리는 이번 연말도 둘이 간단히 와인으로 자축하고 아니, 위로하고 티브이를 통해 새해 보신각 종소리를 들었다.


"나는 매년 저기 가있는 사람들 이해가 안 돼."

"맞아. 사람들이 왜 이리 많아? 이번에는 인형도 있네?"

"오빠, 그냥 인형이 아니고 펭수야. 펭수도 몰라? 으이그 아저씨다, 진짜."

"아아, 저게 펭수야?"

"뭐? 저게?"


어떤 결연한 새해 다짐이나 간절한 소원 목록을 손에 쥔 게 아니라 그냥 펭수를 아네 모르네 하면서 아무런 긴장감 없이 보신각 종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외치니 갑자기 뒷목이 쭈뼛 서기 시작했다. 아, 내 2019년이 이렇게 저물다니 하는 아쉬움과 아무 한 것도 없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지난 1년이 슬퍼지면서 말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 손을 꼭 잡고 유난을 떨었다.


"우리 내년에는 싸우지 말고 좋은 말만 하고 칭찬도 많이 하고 서로 예쁘게 말하자."


카운트다운의 급박한 분위기에 이끌려 급하게 세운 새해 다짐인 셈이었다. 그리고 금세 뻘쭘하게 손을 놓고는 후딱 해치운 새해 의식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새해를 맞이해도 되는 걸까. 작심삼일이라지만 그래도 새해인데 좀 계획도 세우고 다짐도 하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물 흘러가듯 사는 거라지만 그러다 보니 어떻게 내 지난 5년이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2017년은 어떤 일이 있었더라? 2018년은 생각도 안 나는데 벌써 2019년도 지나 2020년이라니, 세월의 속도가 무섭다.



어쩌면 아이가 없어서 그런 걸까

새해를 맞이해 친정집에 다녀왔다. 구정에는 시댁에 가느라 못 보는 동생네도 볼 겸. 동생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다. 윤아는 올해 7살이 되고, 윤서는 올해 3살이다. 웃긴 건 윤서가 몇 달 전 돌이 막 지났는데 3살이란다. 윤아의 애교 재롱에 윤서의 낯가리는 울음에 오랜만에 고것들 보느라 실컷 웃고 왔다.

윤아가 밥은 안 먹고 장난치느라 바쁘다.

"이거 먹어야지 7살 되는 거야. 떡국 안 먹으면 7살 안 된다, 너."

협박인지 회유인지 모를 말을 하자 다시 앉아 먹는 척을 하는 윤아. 나 같으면 떡국 안 먹고 한 살 안 먹겠다.

그나저나 요고요고 언제 이렇게 컸지?


이번 새해를 맞이하며 지난 5년이 흔적 없이 사라진 것 같은 마법을 경험하고 나서야 우리 부부의 삶을 더 들여다보았다. 매일매일 우리는 함께 하는 시간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기억은 지나온 시간만큼 호응하지 않는다. 이런 시간적 착시현상은 어쩌면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지 생각을 해봤다.

만약 아이라도 있었으면 매년 쑥쑥 커가는 아이가 우리 부부의 함께한 시간을 증명하고 있었을 것이다. 육아에 지치기도 하겠지만 그만큼의 기억과 추억이 남고, 그리고 성장한 아이를 보며 보람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계속 몇 살? 몇 살? 세뇌교육이라도 시키려면, 내 나이 먹는 것도 모르고 마냥 우리 아이 한 살 더 먹는 게 뿌듯할 텐데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처럼 심심하고 평온한 새해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매일매일 신랑과 이 곳에서 웃고 울고 기쁘고 화나고 하면서 감정의 폭을 바쁘게 오갔지만 우리의 감정이 흘린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10년 전 쓴 일기에 지금의 내 모습이 담기다

연말 휴가 내내 집안 청소를 하며 몸을 움직였다. 묵은 짐을 정리하고 버리고 가구 배치도 다시 하면서 소위 말하는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했다. 버릴 것들이 한가득 나온다.

품절될까 전전긍긍하며 산 옷, 예전엔 분명 예뻐 보였는데 촌스럽다. 상표를 떼지도 않은 옷, 무안함에 슬쩍 감춰본다. 어리석은 소유욕을 마주하니 낯 뜨겁다.

서재를 정리하다 다이어리며 일기장을 뒤적인다. 매일매일 해야 할 것과 이뤄야 할 것들로 가득 찬 젊은 시절의 기록들을 보니 우울했던 내 20대가 떠올라 얼른 덮어버렸다. 욕심도 많던 시절, 가진 건 없던 시절,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야 했던 시절. 늘 무언가에 쫓겨 쟁취해야만 했던 절박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 씁쓸하다.

그러다 10년 전 내 미래를 상상하며 쓴 일기를 발견했다.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지, 그래서 어떤 가정을 꾸리고 살지 자세히 써놓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친구가 배우자 기도라는 것을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아 처음 듣는 용어였는데, 바로 미래의 배우자에 대해 목록을 만들어 보고 기도를 하는 거라고 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 나도 적기 시작했다. 결혼을 할 생각이 없던 때였는데 참 웃기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어느 정도 그 바람이 지금 내 현실에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신랑도 신랑이지만 특히 이 부분.

티브이 없는 거실, 책을 즐겨 볼 수 있는 공간, 방 하나는 멀티실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또 다른 방은 서재로 한쪽 벽을 책으로 빼곡히 채우기.

지금 우리 집이다.



20대 다이어리가 보여주는 도전 투성의 일상들과 달리, 나는 이제 못 가지는 것에 미련을 버리고 포기하는 법을 배울 만큼 경험과 나이가 쌓였다.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런 기대 없이 무심히 내년이 오는 것을 바라보는 무덤덤함도 생겼다. 더 이상 넘어야 하는 관문이 없고 새해에 더 발전해야 할 동력도 없다. 아이가 없어서 내 지난 세월을 보여줄 증표랄 것도 없다. 자연스럽게 삶에 무뎌진다.

그렇게 맞이한 2020년. 새해의 감흥은 쏙 빠지고 한 없이 무거워진 내 나이에 우울해하기만 하던 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스웨덴 가수의 노래와 10년 전 써놓았던 미래에 대한 일기는 어쩌면 누군가가 지금 나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 마치 선물만 같다.

나에게 그러느니 죽으라는 저주의 노래였지만 ABBA는 마지막에 분명히 말한다.


It's the end of a decade. In another ten years time,

(이제 10년의 끝이에요. 또 다른 10년의 시대에,)

Who can say what we'll find, what lies waiting down the line

(우리가 무슨 일을 맞이하게 될지, 미래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요)

In the end of eighty-nine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89년의 끝무렵에 해피 뉴 이어)


10년 전 써둔 내 일기가 지금 현실이 되었듯이, 새로운 10년을 맞이할 19년 끝무렵에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그래서 또다시 자조할지언정 새로운 해, 새로운 10년을 다시 그려본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20년대를 위하여

19년의 끝무렵에 우리 모두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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