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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들이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는 법

홈카페, 건강한 집밥 그리고 그 외 것들

by 신세라

금요일 퇴근길에 들르는 곳이 있다.

회사 근처 빵집이다. 자연 발효한 건강한 빵을 파는 곳인데 나이가 드니 이제 이런 담백한 빵이 좋다. 빵집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카운터 뒤로 열심히 빵을 만드는 모습이 보이는데, 고소한 빵 냄새와 그 풍경이 더해져 앞에 놓인 빵들을 다 사고 싶게 만든다. 주말에 먹을 만큼만 사야지 하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치아바타를 사들고 나오면 벌써부터 주말인 듯 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제는 불금보다 집에서 주말을 기다리며 두 다리 뻗고 '나 혼자 산다'를 보는 편이 더 좋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원두. 직접 내려 마실 원두가 있어야 우리의 주말이 완성된다.


부엌 한편에 마련한 홈카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카페에 잘 가지 않는다. 대신 직접 커피를 내려마신다. 커피를 좋아했던 우리는 신혼살림을 장만할 때부터 한편에 커피용품을 구비해 두기 시작했다. 드리퍼, 에스프레소 기계, 모카포트를 기회가 될 때마다 사들였다. 처음에는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마셨다. 핸드드립 도구는 비교적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을뿐더러 따뜻한 물을 부으면 부풀어 오르는 커피 가루가 너무 예쁘기도 했다. 요즘은 에스프레소 기계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마시다 보니 좀 아쉬운 맛이 있었는데 그래서 에스프레소 가정용 기계를 하나 장만했다. 에스프레소로 커피를 내릴 폭신하게 깔리는 크레마가 여느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부럽다. 원두 봉지를 사면 2주를 둘이서 꼬박 마실 있으니 훨씬 저렴하기도 하다.

처음부터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는 것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신혼에 느끼는 그 설레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마치 여행지에서 맞은 아침처럼 그 시절 아침도 평소와 다른 것을 먹어줘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같은 거 말이다. 커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시행착오를 여러 번 거치고는 그 느낌을 만들어 가곤 했다.

아메리카노 느낌이 나는 인스턴트커피도 좋아한다. 회사에서는 잘 마시지 않지만 집에서는 괜찮다. 주말 아침에 한 번 에스프레소를 내려마시면 점심쯤 또 내려마시기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이때 인스턴트커피가 빛을 발한다. 달달한 초콜릿과 같이 마시면 이마저도 카페에 온 것 같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그날 먹을 만큼만

어릴 적 집에서 조금 걸어가면 큰 재래시장이 있었다. 엄마는 매일 재래시장에 가서 먹거리를 사 오곤 했는데 가끔 엄마를 따라 시장을 갔던 기억이 난다. 그 시장은 어린 기억에도 물건들이 정말 싱싱했고 물가도 꽤 저렴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웬만해서는 어느 시장, 마트라도 물건이 그리 싱싱하게도 싸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저녁 밥상은 늘 맛있었다. 그날그날 장을 봐온 엄마는 가장 신선한 재료로 집밥을 차리곤 했다. 재래시장 물가가 싸기도 했지만 매일 먹을 만큼 사 오던 엄마의 습관이 없는 형편에도 가장 맛있는 밥상을 마주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한창 '마트 데이트'라는 게 있었다. 주말에 차를 끌고 대형마트로 데이트를 간다는 건데 그만큼 장을 보는 것은 차를 굳이 끌고 나가 트렁크를 가득 담아 올만큼 '거국적인 나들이'였던 셈이다. 결혼하고 몇 번 나도 그 '마트 데이트'라는 것을 해봤는데 몇 번 하다가 관두었다.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대형마트는 엄청난 마법의 장소다. 일단 들어가는 입구가 지하 주차장에서 에스컬레이터까지 구비구비 꾸불꾸불 이어진다. 마치 무슨 미지의 세계를 가듯 긴 여정을 거치게 만든다. 기대감을 한껏 높이기 위한 장치처럼. 그렇게 찾은 마트 입구는 인산인해로 어수선하고, 탁 트이고 화려한 물건들은 소유욕과 구매욕을 마구 자극한다. 분명 필요한 것만 담았는데 십만 원은 훌쩍 넘어버리는 영수증을 받아 들면 뒤늦게 뭐에 홀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마법의 장소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더 어처구니없는 마법은 그 뒤에 펼쳐지는데, 그렇게 꼭 필요하다고 믿고 산 음식들이 일주일이 지나고 쓰레기가 된다는 것.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나는 집 앞 마트에서 그날그날 필요한 것을 사 오는 걸로 내 장보기 루틴을 바꿨다.


간식으로 먹을 아몬드와 요거트까지



그렇게 사 온 것들로 집밥을 차려 먹는다.

문제는 집밥을 해 먹는 데 걸리는 시간과 들이는 에너지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밥을 차려먹는 것은 또 다른 노동이다. 그래서 간편식을 많이 이용한다. 처음에는 육수를 내고 된장 풀어 된장찌개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반조리 제품을 사는 식이다. 이마저도 귀찮을 땐 참치 캔을 따서 김치랑 먹기도 하고, 후랑크소시지를 구워 계란을 얹어 먹기도 하고, 이렇게 점점 식사의 질이 떨어졌다. 한국 음식을 해 먹겠다고 국에 밑반찬에 무리를 하니 오히려 반찬이 점점 이상해졌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한 접시 음식으로 건강하게 먹기로. 간단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어제 장을 본 것들로 대충 꾸민 저녁 식사다.

나도 된장찌개에 깻잎이랑 시금치나물 해서 먹고 싶지만 이런 한국인의 밥상은 퇴근하고 도전하기에는 부친다



그 외에도 돈 들이지 않고 날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제법 많다.

요즘 같은 추운 날씨에 물주머니도 그중 하나다. 밤에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부어 꼭 끌어안고 잔다. 오리털 이불을 덮고 물주머니까지 있으면 난방을 하지 않아도 제법 효과가 좋다. 자기 전 따뜻한 물 한잔도 추운 날 숙면에 필수 요소다.

무료로 운영하는 사진전, 미술관도 찾아다니는 편이다. 어느 유명한 사진작가가 운영하는 무료 전시 공간을 가장 좋아한다. 요즘은 부암동에서 서촌 근처로 이사를 했더라. 교통이 더 좋아졌다. 갈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이다. 그 외에도 잘 찾아보면 무료 전시가 제법 많다. 무료 관람권도 간간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놓치지 않고 가는 편이다. 마침 오늘 식사를 했던 곳에서 이벤트를 하는지 무료 전시회 티켓을 줬는데 조만간 가볼 생각이다.

늦은 저녁 모든 불을 끄고 거실에 조명 하나를 두는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 조명 아래 보는 넷플릭스는 사랑이고.



내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결혼한 지 5년 차가 되었지만 아직도 둘이 사는 지금이 어색하다. 30년을 넘게 각자 살아온 우리가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이곳에 적응하는 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하나씩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소소한 것들을 찾아가는 작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작은 행복이라면 더 좋겠다. 가만히 요즘 나의 삶을 바라보다가 문득 별거 아닌 거에 만족하고 흐뭇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더 크고 멋진 행복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보다 일상에서 순간순간 마주하는 여유와 반복이 더 기억되는 것 같다. 내 배에 놓인 따뜻한 물주머니와 내 등 뒤로 어둠 속 은은하게 비치는 조명 빛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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