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족의 고민과 일상
11월은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운 달이다.
내 동생 생일이 11월이고, 그 두 딸들의 생일도 11월이다. 열흘을 사이에 두고 모두 몰려있다. 11월은 그래서 경제적으로 좀 버거운 달이다. 사실 그보다 조카들 생일 선물은 뭘 해야 할지, 동생한테는 뭘 줄지 고민하는 게 더 버겁기도 하다. 누군가의 생일을 생각하면서 그에게 필요한 선물을 생각해낸다는 게 여간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엊그제 조카들 생일선물은 해결했다. 요즘 코로나 19로 만나기도 어려워서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해 택배로 주문을 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안아주고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에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온라인 주문이 내 여러 수고를 덜게 해서 마음만은 가볍다. 뭘 고를까 하다가 예쁜 원피스를 하나씩 골랐는데 애를 키워본 적이 없어 대충 조카들 나이보다 한 살씩 위로 사이즈를 골라줬다. 여자 애기들 옷은 왜 이렇게 예쁜지, 이거 입으면 우리 조카 더 예쁘겠다 싶은 걸로 고르자니 사주고 싶은 옷은 늘어난다. 그중 가장 예쁠 것 같은 옷으로 골랐다.
주문을 하고 하루가 지나 카톡이 왔다. 조카들에게 옷을 입히고 동영상에, 사진에, 참 많이도 찍어서 보내준다. 역시 우리 올케는 립서비스가 좋다. 너무 잘 어울린다고, 잘 고르신다고, 센스가 좋으시다고 카톡에서 하트 이모티콘이 계속 날아온다. 이러니 우리 부모님에게도 사랑을 받지. 내가 가지지 못한 예쁜 말솜씨에 나 역시 기분이 좋다. 사진으로 조카들을 보니 더 보고 싶다. 조카딸 둘이 나란히 예쁘게 차려입고 있으니 너무 예쁘다.
“고모 고마와요, 고모 보고 싶어요, 고모 빠빠.”
자기 엄마를 닮아서 애교가 많다. 딸 욕심이 난다.
조카로 족하다
그래도 아직, 아이 욕심까지는 멀었나 보다.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다른 세상 일처럼 느껴진다. 남편이 아이를 가지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몇 년을 우리 둘이서 살다 보니 나 역시 지금 생활에 익숙해졌다. 우리 둘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남편의 생각에 그대로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딩크족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생각했던 터라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남편의 생각에 솔직히 갈등도 있었다. 늘 내가 남편에게 주장하는 것은 내 나이는 이미 노산이라는 것과 나중에 찾아올 외로움이었다. 우리 둘이 이렇게 살다가 늙으면 어떻게 할 건데, 50 다 되어서 그때 후회하고 아이 가지려면 그건 불가능하다, 등등.
내 주변 친구들이나 동료에게도 틈만 나면 물었던 것 같다. 아이를 가져야 하니, 안 가져도 되니. 돌아오는 답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별 도움은 안 됐다. 키워보니 굳이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사람도 있어 살짝 당황을 했던 것을 빼면 말이다. 의외로 그런 대답이 많았다는 것에 더욱 나는 힘이 빠졌다.
딩크족의 평범한 일상
주말에는 평일에 못다 한 일을 하는 편이다. 한 시간 넘게 앉아서 책을 보기도 하고, 동네 뒷산이나 집 주변 천으로 산책을 즐긴다. 주말 점심을 해결하기 어려운 날은 요즘 핫하다는 맛집이나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도 할 겸 남편과 데이트를 한다. 같이 운동도 시작했다. 나는 남편에게 요가를 알려주고, 남편은 나에게 조깅을 알려준다. 가끔 술이 당기는 날에는 근처 마트에서 저렴한 와인을 사다가 안주와 함께 저녁을 해결하기도 한다. 이도 저도 하기 싫은 날은 밀린 tv 예능을 몰아보거나 부족한 잠을 자기도 한다. 주말 낮잠은 역시 꿀맛이다.
남편은 나에게 점점 소중한 존재가 되어간다. 둘이 살고 있으니 온전히 상대에게 관심을 더 기울인다.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풀려버리니 말다툼도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남편은 점점 아들 같아지기도 하고, 가끔 내가 그의 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서로에게 피우는 애교가 늘어가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민망해 이런 말을 내뱉고 만다. “이래서 애가 있어야 하나 부다.” 이렇게 남편과 살다가 나중에 누군가 홀연히 떠나면 어쩌하나 싶게 남편은 나에게 유일한 소중한 가족이 되어버렸다.
그건 내 미래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행복이었다.
주말에 좀 부담스러운 일정이라면 친정에 가서 밥을 먹고 오는 것이다.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홀랑 먹고 오는 일정이지만 아침부터 차리고 나가는 게 귀찮고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평소라면 느긋하게 남편과 커피 한 잔 내려서 수다를 떨고 있을 주말 아침인데, 커피를 급하게 홀짝이고 집을 떠날 준비를 하니 좀 아쉽다. 하지만 그래도 내 마음과 발이 움직이는 건 가족을 볼 수 있다는 설렘 덕이다. 그 설렘에는 예쁜 조카딸들을 본다는 기대가 아마 90%는 될 것 같다. 엄마, 아빠도... 그래 조카보다 더 많이 보고 싶다고 해두자.
우리 가족 네 명이 이제는 조카 둘까지 여덟 명이 되었다. 결혼 전 살던 조용했던 그 집이 북적북적 시끄럽다. 네 명이 가족일 때 무뚝뚝하던 부모님이 이제는 며느리랑 조카를 보고 계속 웃으시니 두 분 참 이제는 좀 편안하신가 싶어 내 마음도 좋다. 채비하고 오는 길이 귀찮아도 막상 와서 보면 마냥 즐거운 길이다. 그 집에서 가족과 뒹굴며 작은 행복을 많이 느끼고,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간다. 이런 걸 보면 우리도 아이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늙어서 우리도 이렇게 행복해야지. 가족들하고 있는 지금 너무 행복해.
그런 생각과 미련으로 아이를 낳자고 다짐하다 하루는 가만히 내 삶을 바라보니 한 가지 생각이 스친다. 내가 느끼는 행복은 바로 지금, 현재의 행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 현재의 행복일 뿐이다. 그들과 내가 행복한 건 지금 내가 현재에 만족하고 여기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미래의 행복을 바라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면 현재의 육아에 지쳐 엄마와 갈등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고, 일과 육아라는 현재의 상황에서 지치고 힘들어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 공간에서 나는 행복했지만 내 동생과 올케도 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진짜 행복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내가 나의 아이들과 즐거울 거라는 보장은 누구도 해주지 않지만, 나 혼자만 상상 속에서 그렸던 것 같다. 지금 행복하니, 미래도 행복할 거라 너무 쉽게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내가 내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한 건 지금 아이가 없어 심적인 여유와 경제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모님의 현재의 모습에서 자식이 있어야 다복하다는 행복론에 익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건 나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지금 내가 행복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게 행복할 뿐이다. 그 모습은 내 미래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행복이었던 것이다.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시간이 없다고 스스로를 압박하지 말고 그냥 현재를 즐기자고 생각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두려움에 떨지 말고 지금 현재 주어진 내 환경을 즐기자고 말이다.
결국 답은 없는 문제다.
인생에서 내가 마주했던 선택은 늘 어려웠다. 그래도 조금은 감을 잡은 것 같다. ‘답’이 아니라 ‘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