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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Dec 15. 2020

딸아, 실명 인증은 뭐니?

70대 아빠의 스마트 생활 분투기

퇴근하고 집 앞을 산책하고 들어오는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아, 실명인증은 뭐니?


뜬금없는 아빠의 질문이다.

스마트폰으로 회원가입을 하는 중인데 다 입력을 해도 넘어가지 않는단다. 자꾸 실명인증을 하라는데 어떻게 하는 거냐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이름을 입력하는 곳 옆에 버튼이 있을 거라고 설명을 해줬지만 그런 게 없단다. 도저히 모르겠단다. 어쩌지, 이 밤중에.

어쩌긴 뭘 어째. 그냥 포기하셔야지.


"아빠, 내가 다음에 집에 가면 해줄게. 다음에 나랑 같이 해."



 거기서  서기 싫어

아빠는 최근 나에게 여러 가지 부탁을 했다. 재난기본소득 '신청'이니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이 '신청', 저 ‘신청’, 뭐 그런 소위 '신청'들 말이다. 처음에는 근처 동사무소에 가서 신청을 하려고 갔더니 줄이 너무 길더라는 거다. 마침 주말에 집에 들른 딸에게 그 '신청'이라는 것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다는데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내가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끝내자 너무 좋아하셨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몇 시간 줄을 서야 되니..."


그러고는 이내,


"나 줄 서기 싫어. 거기 서있기 싫어... 다 노인네들 뿐이야.”


하신다. 당신도 노인네이면서.


스마트폰 앞에서 우독 작아지는 우리 부모세대. 아빠는 스마트 생활에 무지한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딸이 해낸 '신청'이라는 것이 이리 간단하게 되는 세상에서 줄을 길게 서서 시간을 들여야 하는 당신 모습이 보기 싫다고 한다. 뭐하나를 하려고 해도 바보처럼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당신 세대의 단상을 안타까워했다.



가만있어봐, 내가 다시 한번 해볼게

그래도 아빠는 제법 스마트폰을 다룰 줄 아는 분이다. 처음 스마트폰을 사서 카톡 하는 법을 익히더니 혼자 네이버밴드 같은 소모임 어플도 받아서는 당신의 형, 동생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명절 말고는 평소 거의 왕래가 없는 형과 아우 사이에 쉽게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대한 호기심도 남달라서 내가 집에만 가면 그렇게 스마트폰을 갖고 오신다. 그리고 한 시간 가량 스마트폰 강의가 이어진다.


"가만있어봐, 내가 다시 한번 해볼게. 이렇게 하는 거 맞니?"


마치 어린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법을 배우듯이 여러 번 혼자 해보고 익숙해져야 나를 놓아주신다. 아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런 아빠 옆에는 기계다루는 게 복잡해서 머리 아프다는 엄마가 정신없다고 머리를 흔든다.


어플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쇼핑을 하고 영상을 보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아직 행정처리 같은 ‘신청’을 직접 하기는 어렵다. 스마트기기에 자신감도 붙었겠다 언제까지 딸에게 부탁을 할까 싶어 직접 ‘신청’이라는 것을 해보려고 하신 것이다. 그러다 마주한 첫 난관이 바로 ‘실명인증’. 아이디랑 비밀번호는 넣으라고 해서 넣었는데 도통 이 ‘실명인증’이 괴롭힌다. 이때 도움을 줄 사람은 딸밖에 없다. 긴 시간 두 분이 끙끙댔는지 전화 통화 너머로 짜증 섞인 엄마의 외침이 들린다. “좀 잘 좀 봐봐요. 옆에 있다잖아.”



신경 쓰지 말고 쉬어... 정말?


부모님이 두 분이서 사시면서 자식의 빈자리는 비단 집안에 자리한 빈 공간에서만 느끼신 게 아니다. 남들처럼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쓰고 싶을 때마다 자식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집에 갈 때마다 그동안 궁금했던 스마트폰의 기능을 연달아 물어보시는 게 아닐까. 부모님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줄 때마다 괜히 뭐라도 잘못 조작하실까 불안하다가도 가르쳐주지도 않은 ‘마켓컬리’까지 이용하는 엄마의 모습에 깜짝 놀라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부모님은 지금 이 ‘스마트한 세상’에 제법 잘 적응하고 있다.

걱정은 좀만 해도 되겠다.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내가 가르쳐줘서 잘했어. 다 됐으니 걱정허지마."


정말일까? 그리고 연달아 온 세 개의 카톡.


"응 확인을 안 눌렀드라구"

"그런데 메모보관이 또 안 된대"

"신경 쓰지 말고 쉬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어, 엄마. 메모보관은 또 뭐래. 기다려, 주말에 갈게.

엄마랑 아빠는 또 그렇게 딸을 기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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