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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Nov 19. 2020

책상을 정리하니 보이는 것들

어지럽게 놓인 집착과 미련을 버리는 연습

 책을 책장에 꽂아두는 편인가,
아니면 책상 위에 그대로 올려두는 편인가?


이 질문이 뜬금없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 후 상대와 생활방식이 다르면 어떤 질문도 뜬금없지 않다.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책을 그냥 두는 편이고, 신랑은 그 반대다.

나는 책상 위 공간이 모두 비워져 있으면 불안감을 느끼고, 신랑은 책상 위 공간에 무언가 어지럽게 올려져 있으면 화를 느낀다.

우리에게 이 문제는 하루에 한 번 중요한 문제가 되어 날아온다.

같은 책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이렇게 다르다.

그러니 이런 대화는 늘 있게 마련이었다.


나 : 내가 어제 보던 책 어디에 뒀어?

그 : 책꽂이에 있잖아. 여기 말이야, 여기. 읽고 있는 책들 여기에 모아두기로 했잖아.

나 : 아니, 책을 다 읽지도 않았는데 왜 내 책 건드려! 책 읽다가 흐름이 끊기잖아.

그 : 책은 다 봤으면 꽂아두고 다시 볼 때 꺼내는 거지, 무슨 흐름이 끊겨.


나는 그렇다. 책상 위에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 생활을 해왔다. 그래야 다음에 다시 책상에 앉았을 때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목, 저 과목 공부해야 했던 학창 시절은 더 그랬다. 수학책, 영어책, 과학책, 다 이쪽저쪽에 쌓아두곤 했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은 읽고 있던 책을 펼쳐두고, 저쪽 한쪽에는 읽다 만 책을 쌓아두고 지내고 있다. 그래야 다음에 책상에 앉았을 때 빨리 적응을 하고 바로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늘 신랑에게 피력하고 있다. 물론, 씨알도 안 먹히지만.



어지럽히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이 만나면
누가 이길까


흔히 어지럽히는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치우는 사람이 치우다 치우다 지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는 다르다. 서너 발자국 내 뒤를 밟으며 하나하나 내 흔적을 정리하는 사람이다.

뭐 이런 식이다. 내가 아이패드를 소파에 두고 서재로 잠깐 들어가면 어느새 나를 따라오면서 아이패드를 들고 쫒아온다. 아이패드의 자리는 서재 책상 밑 서랍이다. 아니 그냥 좀 두지, 나 유튜브 더 볼 건데... 소용없다. 이미 아이패드는 서랍행이다.

침대에 누워서 어제 읽던 책을 협탁 위에서 찾을라치면 흔적도 없다. 그 책은 원래 자기 자리였던 곳, 책꽂이에 얌전히 꽂여 있을 뿐이다. 내 곁을 떠난 지 이미 오래였던 것이다. 침대에서 뭔가를 읽다가 스르르 잠드는 감성도 모르는 인간, 그의 짓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책상에서 일어나며
 보던 책을 제자리에 꽂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런 나의 낯선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정리왕' 내 신랑과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깨끗한 책상이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어지럽게 뭐라도 놓여있던 '내 책상'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 책상'은 보던 책, 보다 만 책, 영어 회화책, 다이어리, 일기장이 널브러져 있던 책상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올려져있지 않은 이 깨끗한 책상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요즘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에서 여러 집을 정리해주고 있는 이지영 대표의 책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집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 과거에 대한 집착, 미련에 관한 물건이거나 혹은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으로 인해 집에 들인 무언가입니다.”


집착과 미련.

책상 위를 어지럽히던 내 심리가 이러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내 책상 위에 있었던 것을 다시 생각해봤다. 읽고 싶어서 책을 사기는 샀는데 막상 읽다 보니 재미가 없어 덮어둔 읽다만 책, 영어 공부의 뜻을 품고 앞에 1과만 연필로 몇 번이나 공부하다만 영어책, 일기를 꾸준히 쓰겠다며 다이어리를 사서는 기록한 일기가 며칠 안 되는 쓰다만 일기장.

이런 것들이었다.

언제 다시 펼칠지 모르는 것들로 한가득 있었던 것이다.

바로 뭔가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었다.


“내가 보니까 너 며칠 지나도 읽지 않던데 무슨 흐름이 끊긴다고 그걸 그냥 둬?”

신랑의 뒷말이 그제야 들린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집착과 미련이 보인다. 책을 읽어야겠고 영어는 잘하고 싶고 하루를 정리하면서 산뜻한 기분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아직 더 나은 사람에 익숙해지지 않았으니 대신 책상 위에 물건을 다 꺼내어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꺼내놓으면 읽을 것 같고 공부할 것 같고 쓸 것 같았다. 오히려 지저분한 책상이 보기 싫어 책상에 앉지 않고 피했던 과거가 떠오른다. 결국 정리되지 않은 것들로 한가득 쌓이기만 했다.


처음에는 내 의지로 정리를 한 게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바람에 내 집착과 미련도 갑자기 정리가 되어버렸다. 보지 않을 책, 하지 않을 공부, 쓰지 않을 일기. 매일 스치며 눈으로 마주했던 집착과 미련들이 모두 내 눈에서 사라지니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답답함도 어느새 사라졌다. 내 마음이 편해졌다. 깨끗하고 넓은 공간을 드러낸 책상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하지 못한 죄책감을 일부러 느끼지 않아도 돼. 잘 안되면 그냥 안 되는대로 자책하지 말고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거야. 진짜 원할 때 그때 하면 되는 거야.


이제는 나도 깨끗한 책상이 더 좋다. 책꽂이 한쪽에 보던 책들을 모아 두고 하나하나 그때그때 책을 읽는 재미도 좋다. 깨끗한 책상이 보이니 더 자주 책상에 앉게 된다. 그 공간에서 더 쉽게 내 할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 삶도 조금은 정리가 되고 머릿속 생각들도 정리가 되는 기분도 든다.

그래도 여전히 난 정리에 완벽하지 않다. 지금도 들린다. 남편의 잔소리.

“좀 제자리에 두라고.”

습관적으로 반항 하지만  잔소리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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