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들을 응원하는 이유
2020 넷플릭스 결산 - 킹덤 2, 인간수업, 안은영, 스위트홈
더 센 놈이 나타났다.
없어지기는 하는 걸까.
더 센 놈이 나타났다. 영국에서 코로나 19 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다. 코로나 19보다 1.7배 전염성이 높다고 하니 숨이 턱 막힌다. 백신이 상용화가 되어 몇몇 국가에서 접종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변이종이 나타났다니 힘이 빠지는 대목이다. 코로나 19의 끝은 어디일지 길었던 2020년의 끝에서 잠시 생각해 본다. 그런데 과연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이 질문을 머릿속으로 되뇌다 혼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올해 내가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이 떠올라서다.
<킹덤 2>, <인간수업>, <보건교사 안은영>, 그리고 <스위트홈>까지. 올해 공개되어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인기를 끈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작품들이다. 우리는 왜 이 드라마에 이끌렸을까. 이 작품들은 단지 넷플릭스라는 거대 플랫폼의 힘을 빌려 인기를 끌었던 것뿐일까. 물론, 넷플릭스를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의 수준을 갖추고 시청자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는 장르의 확장을 이루어 내고 아낌없이 투자한 결과가 분명 흥행에 한몫하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좀비물, 범죄 스릴러, 판타지, 크리처 물. 그 이름도 생소한 특정 장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이 끄는 대중적인 인기는 충분히 설명되기 힘들어 보인다.
무엇이 대중의 인기를 끌었는지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중들은 이 작품들을 보며 작품 속 주인공을 응원하고 그들에게 애정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주인공은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데도 말이다(인간수업). 살아야 한다, 잡히면 안 된다, 그들은 열세에 몰려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그 위기를 뚫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죽이고 또 죽여도 그 속도보다 더 빠르게 전염되어 가는 좀비들(킹덤), 생존을 위해 범죄의 길로 들어가 완벽 범죄를 꾀하지만 점점 조여 오는 수사망(인간수업), 혼자 외로이 자신만 보이는 처치해야 하는 나쁜 욕망, 젤리들(보건교사 안은영, 이 작품은 난해하다. 솔직히 젤리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정유미 연기만은 인정한다.), 좀비는 죽기라도 하는데 이번엔 머리가 잘려도 끝까지 절대 죽지 않는 괴물들(스위트홈). 이들이 처한 상황이 결코 쉽지 않다. 이게 진짜 현실이라면 돌아버렸을 것 같다. 하지만 가만히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니 이 역시 그리 녹록지는 않은 것 같다.
야광봉과 비비탄총
어디 없나
출세만을 생각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좀비 정치인’들이 설치고 사람의 욕망이 더해진 연일 오르는 ‘집값 젤리’가 돌아다니는 만만치 않은 세상이다. 우리도 안은영이 가지고 있던 야광봉과 비비탄총을 가지고 그들을 마구 무찌르고 싶다. 올해는 ‘좀비 정치’와 ‘젤리 경제’에 더해 ‘괴물 바이러스’라는 놈이 나타났으니 안 그래도 무력한 우리를 더욱더 무력하게 만든다. 힘들어도 일상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일상마저 사치가 되어버린 현실, 야광봉과 비비탄총이 더 절실히 생각나는 요즘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정도 무기를 가지고 있음 직한 작품 속 주인공을 보며 열심히 그들을 응원할 뿐이다.
그렇게 열심히 응원하다 넷플릭스가 꺼지고 현실로 돌아와 까만 TV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놉! 그럴 필요 없다. 적어도 우리는 지금 넷플릭스를 보며 사회적 거리두기만큼은 잘 실천하고 있지 않나.
“이것은 살아남는 것보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게 더 힘겨운 세상에서 기어이 살아갈 이유를 찾아내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 <스위트홈> 작중 내레이션
우리는 비록 야광봉은 없더라도 적어도 괴물(코로나 바이러스)을 마주하고서야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내는 ‘그들’(이건 각자 해석하기 바란다) 보다는 좀 더 낫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것 우리 좀 더 버텨보자. 우리가 응원했던 그들도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았다. “누군가는 말했다. 가장 짙은 어둠도 가장 흐린 빛에 사라지는 거라고” - <스위트홈> 작중 내레이션
백신은 적어도 ‘흐린 빛’ 그 이상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