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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Jan 18. 2021

매일 일기 그리고 매일 브런치

선생님 코멘트가 달렸던 일기 쓰기 숙제

내가 쓰는 행위에 대해 처음 경험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 일기였다.


어린 나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은 참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매일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고작, 학교 가서 친구랑 놀다가 집에 오면 동생이랑 싸우고 엄마가 불러 심부름을 했다가 밤이 되면 자는 게 다인데  이 ‘참을 수 없는 초등학교 1학년의 가벼운’ 삶에 무슨 그리 할 말이 많을까.

결국 일기는 이런 내용이 다였다.

“오늘 학교에 갔다. 친구와 놀았다. 집에 왔다.”


그런 내용을 써서 내다가 매번 같은 내용을 쓰기도 민망했다. 점점 나는 무슨 내용을 쓰면 좋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먼저 시비를 걸어 싸웠는데 엄마는 누나인 내가 참아야 한다며 나만 혼내 세상 너무 억울했던 일, 아랫집에 사는 친구가 놀자고 불러내 둘이 집 근처 놀이터에 다녀온 일, 집에 와보니 엄마가 시장에 갔는지 집에 아무도 없어 무서워 덜덜 떨던 일. 하루 동안 일어난 일만 해도 여러 이벤트가 얽혀 있었다. 그리고 내 감정도 그에 맞춰 다이내믹하게 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감정 중 하나만 잡아서 쓰더라도 그림 일가장에 글씨 부분을 채우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매일 일기를 쓰다 보니 나의 삶에도 쓸거리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조용히 앉아 일기를 쓰고 있는 게 신기했던지 나를 식탁에 앉히고 내가 일기를 쓸 동안 설거지를 했고, 나는 일하는 엄마 등에 대고 그날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이야기하면서 이거 쓸까, 저거 쓸까 엄마랑 같이 고민을 하곤 했다. 일기 쓰는 행위는 작은 내 삶에서 하나의 루틴이 되었고 즐거움이 되어 갔다.


그러다 한 번은 선생님이 검사 후 돌려준 내 일기장에서 선생님의 메모를 발견했다.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내가 쓴 일기 내용을 공감해주는 글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공감이라는 감정을 처음 배웠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에 설렜고, 신기하고 마냥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후 선생님의 코멘트를 받기 위해 선생님의 메모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일기를 썼던 것 같다. 그래서 매번 일기장을 돌려받으면 빼꼼히 선생님의 메모가 있는지 일기장 속을 들여다보았다. 점점 선생님의 메모가 있는 날의 주기는 짧아졌다. 내 일기장은 어느새 선생님과 나의 소통 도구가 되어있었다.


지금 나는 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공간에 글을 남긴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마주하는 브런치 앱의 흰 화면과 깜박이는 커서는 가끔 숨을 막히게 하고, 한숨만 나오게 한다. 처음 브런치 작가에 임하며 자신 있고 들떠있던 감정은 온데간데없다. 점점 브런치와 멀어진다.


올해 다짐을 한 것 중 하나가 ‘브런치 매일 쓰기’이다. 너무 힘든 과제이다. 매일 무슨 이야기를 쓴단 말인가. 하루 종일 회사에 메여 있다가, 집에 오면 쉬고 다음 날 출근을 준비하기도 바쁜데 매일 브런치를 쓰며 겪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매일 브런치를 내 목표로 끝내 삼았다. 숙고를 거듭하다가 아주 가끔씩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가는 그나마 있던 글쓰기 세포들마저 죽어버릴지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두리번거린다. 매일 글 쓴다는 브런치 작가들의 글도 읽고, 매일 글을 쓰자는 서점에 나온 책도 많이 읽었다. 읽어도 내가 찾고 있던 해결책은 없다. 다만 큰 위안을 얻었을 뿐이다. 그들도 매일 글 쓰는 거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브런치’라는 어마 무시한 도전 목표를 앞두고 뜬금없이 내가 언제부터 글을 썼는지 떠올려봤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시절, 일기 쓰던 그 조그만 손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의 독자는 엄마랑 담임 선생님 둘이었지만 둘의 코멘트를 얻기 위해 부단히 열심히 끄적댔다. 별거 아닌 일상에서 느꼈던 하나하나의 감정을 글로 써보니 글이 풍부해지고 할 이야기도 많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마 그때의 ‘매일 일기’ 쓰던 내가 ‘매일 브런치’라는 과제에 답을 대신해주고 있지 않을까. 거창한 것을 쓰려고 하지 말고 일상의 풍경, 감정,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말이다. 아주 작은 거라도 쓰다 보면 이야기로 부풀어 공감을 얻을 포인트는 분명 있기 마련이다.


내 일기장에 선생님 메모가 달리면 쪼르륵 엄마에게 달려가 같이 보면서 키득거리던 그때가 생각난다.

나는 이미 그때 무플이 악플보다 더 슬프다는 30년 후의 진리를 깨달았던 것 같다.

뭐 물론, 브런치를 하면서 무플에 익숙한 지 오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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