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쓸 자격이 아니라 글 쓸 준비를 보는 것
브런치 앱을 하루에도 여러 번 열어본다. 내 글이 잘 있는지 보고 또 본다. 하루 중 멍하게 있는 시간, 이제는 내 브런치를 생각한다. 어제 이런 걸 썼는데 오늘은 뭘 써볼까. 아 저거, 아 그거, 아 이거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들을 붙잡고 스마트폰 메모 앱을 재빠르게 열어 메모를 한다. 그래, 이렇게 쓰면 재미있을 것 같아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거 같아 맞아 그래 그거야. 나중에 열어보면 그 순간만큼의 감흥과 영감이 없지만 그래도 급하게 타이핑한 작은 글씨를 계속 바라보면 뭔가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침에 일어나 맞는 찬 공기도 반갑고, 출근길 꽉 들어찬 전철에 한발 들이밀면서도 즐겁고, 퇴근길도 가볍다. 이제 퇴근하며 남편에게 카톡을 하기보다 브런치를 연다.
어떤 연애 감정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활력이 느껴진다. 매 순간 매 순간.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한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 한 번은 2년 전쯤인데 그때는 점잖게 양해를 부탁하는 메일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이번 기회에는 브런치 작가로 모시지 못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울까. 그 후 브런치 존재를 잊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카카오톡에 브런치 채널을 구독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때 어떻게 구독을 한 건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쨌든 비정기적으로,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어떤 정기마다 브런치 글들이 내 카톡으로 배달되어 왔다. 관심을 갖고 읽기도 있지만 바쁜 출근길, 어떨 때는 그렇게 배달되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귀찮을 때도 있었다. 구독 취소가 귀찮아 그냥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때 여전히 브런치 작가가 되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처음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을 때랑 두 번째 신청을 했을 때, 달라진 것은 내 자세였다. 바로 '글 쓸 준비가 되었는가'. 브런치 작가 심사팀(이렇게 부르는 게 맞나 모르겠다)은 이 점을 기가 막히게 알아냈다.
내가 쓰겠다는 주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결혼 생활이었다. 다만 첫 번째는 즉흥적으로 브런치를 서핑하다가 나도 해봐야지라는 생각으로 평소 쓰고 싶었던 글에 대해 설명을 했다. 보여줄 블로그도 없었고 첨부한 글도 없었다. 내 기획안이 멋있다고 생각했고 보여줄 글이 없어도 바로 먹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실패.
두 번째 신청 때는 전략을 바꿨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기획은 첫 번째와 같았지만 작가 소개, 기획안(개요), 보여줄 글, 이렇게 세 부분에 일관된 주제를 담으려고 했다. 예를 들어 내 경우 결혼 생활을 쓰겠다고 했기에 작가 소개에도 결혼한 주부로서 일하는 맞벌이 부부로서 내 정체성이 담긴 소개를 했고, 어떤 글을 발행할 거냐는 일종의 기획안 부분에서는 매거진 이름, 매거진 주제, 매거진 목차(10개 정도)를 펼쳐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여줄 글이 있냐는 질문에는 목차에 있던 세 편을 글로 첨부했다. 그 글 중 실제로 두 편은 브런치 작가가 되고 올리기도 했다.
두 번째 브런치 작가로 신청을 하면서 이번에는 될 것 같다는 예감이 왔다.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 브런치 앱을 하루에도 여러 번 들락날락거렸다. 이틀 뒤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메일이 한통 왔다. 배시시 웃음이 났다.
브런치 작가로 내 공간이 생겨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되자 짧은 시간 참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내 글을 보여줄 곳이 없어 생기던 갈증을 느끼던 차에 시원한 탄산수를 마신 것과 같다고 할까. 쓰고 싶은 글들이 너무 많았고 아이디어들이 내 머리를 자꾸 괴롭혔다. 그냥 혼자 방에서 끄적끄적하면서도 그 자체가 재미있고 신이 나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내가 비로소 살아있는 느낌이 났다. 삶에 생기가 돌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브런치에서 작가 신청을 통해 승인하는 과정은 내 글솜씨나 글 쓰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보다는 내가 작가가 되었을 때 책임감을 가지고 꾸준히 쓸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는가를 가늠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2년 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면 내 브런치는 한동안 텅 빈 채 아무 글도 없을 뻔했다. 내 블로그처럼. 당시 나는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면서도 내 생활이 바빠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작가 승인 여부에 도움을 줄 글을 진득하게 앉아서 쓸 시간도 없었다. 그냥 작가를 시켜준다기에 그럼 나도 그 호칭을 받고 싶다고 떼쓰듯 신청서를 썼던 것 같다. 첫 번째 도전과 두 번째 도전 사이에 놓인 2년의 시간 동안 내 글솜씨가 좋아질 리 만무하고, 사유가 깊어질 리 만무하다. 단지 난 이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좀 생기고 그렇게 글을 쓸 준비가 되었던 것뿐이다.
'감히' 브런치 작가가 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는 지금 브런치 작가가 됐다.
브런치 카톡 알람이 귀찮다고 생각이 들 즈음에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새로운 작가의 탄생'이라는 문구가 떴다. 이번에는 귀찮지 않았다. 그동안 서점에서 손이 가고 눈길을 끌던 에세이 책들이 바로 브런치에서 탄생한 작가들이라는 것을 알고 '세상이 변했구나. 이게 되는구나' 생각했던 때였다.
언젠가는 글을 쓰고 싶다고, 작가가 될 거라고 내 가까운 주변인인 엄마와 남편한테 매일 말을 했다. 말은 했지만 글과 멀어진 지 9년은 흐른 것 같다. 글과 멀어지니 자연스레 책에서도 멀어졌다. 내가 정신을 놓고 흘려버린 9년의 시간 동안 세상은 많이 변해있었다.
어떻게 작가가 되어야 하는지, 신춘문예에 응모를 해야 하는지 등의 번뇌를 가지고 신춘문예 당선작들은 집어 읽다 보면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잘 쓴 글이라니 나도 한층 무게를 잡고 흉내 내려고 폼을 잡으면 한 글자도 써지지 않았다. 난 어떻게 작가가 되나 생각만 많아졌다. 그 시절 에세이라는 것은 이미 유명해진 사람들이 쓰는 장르였다. 무명의 평범한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필 작가로 쓰는 게 에세이인 시대였다.
그래, 세상이 변했구나. 이게 되는구나. 브런치가 되는구나. 근데 나는 될까.
아니라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브런치. 나는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흘려버린 지난 9년이란 시간에 내 죄책감과 좌절감을 넣고 꽁꽁 감싸 가슴 깊은 곳에,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곳에 숨겨두었다. 이번 기회마저도 포기하고 눈감아 버린다면 더 이상 내 마음의 짐을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마감은 11월 17일. 브런치 작가 승인 11월 6일. 사나흘 프로필 꾸민다고 소비하고 떨려서 못쓰겠다고 머리 박다 보니 남겨진 일주일. 출장까지 잡혀 글 쓸 수 없는 날이 있기도 했던 그 일주일. 1일 2포스팅, 막판에는 1일 4포스팅으로 벼락치기를 해서 브런치북 하나를 만들었다. 마지막에는 머리가 멍해져서 무슨 정신으로 썼는지 모르겠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incera01
참 바쁜 한 주였다. 이제 한 숨 쉬면서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들을 다듬고 생각하고 하나하나 쓰고 싶다.
브런치 작가. 아직도 어색하다. 그러면서도 매일 저녁 퇴근을 하며 나만의 비밀 놀이터에서 놀 생각에 둥둥 구름을 밟고 집에 온다.
멍하게 아무 생각 없이 앉았으면서도 머리를 훑고 지나가는 수많은 생각들, 멍하게 바라보고 멍하게 받아 적고 싶다. 멍하게 초라한 내 브런치 통계를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