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서점 서가의 책등을 훑다가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교복에 달린 명찰로 보았던 이름, 그리고 그때보다 어린 그녀의 목소리는 동요 테이프로 자주 들었던 터다.
‘OO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네 하고 달려가면, 너 말고 네 아범~’
이 가사를 안다면, OO안의 이름도 떠오를 것이다. 그 이름은 예명이며, 그녀는 내가 다닌 국악중고등학교 일 년 후배였다. 나는 대학교에 다니다가 중간에 국악 전공을 그만두었지만, 그녀는 평생을 음악인으로 살고 있다. 언젠가 검색해 본 뉴스에선 최연소 판소리 전 바탕 공연이 나왔고, 판소리 창작에도 도전했으며 대중음악에도 관심이 있어 자기 이름을 건 밴드를 하고 있다 했다. 사실 난 그간 그녀의 음악이 들릴라치면 애써 귀를 막았다. 친분도 없는 데다, 음악 또한 내 취향이 아니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을 그날 알게 된 것이다.
책을 냈다고?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글도 잘 쓴다고?
나는 지금 글쓰기를 배우러 다니는데 그녀는 벌써 책을 내버렸네, 내가 바라던 타고난 음악적 재능에 방송계 부모를 가진 그녀는 왜 도대체, 내가 잘하고 싶은 분야까지 손을 대는가? 마치 나는 위험한 경쟁상대를 맞닥뜨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굴고 있었다. 비이성적으로 마구 떠오르는 상상에서는 경쟁자에게 소심한 훼방을 놓는다. 책을 좀 구겨놓거나 구석에 뒤집어 꽂아둘까? 책 내용이 궁금하지만 돈이 아까우니, 중고 책값이 이천 원까지 떨어지길 기다려 볼까. 내가 이렇게까지 저급하고 유치해질 수 있구나, 난데없이 나타난 강력한 감정에 휘말려 든 채, 꺼내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건물을 나눠 썼다. 한 학년에 백 명 남짓의 정원으로 작은 규모였는데, 선후배가 마주치면 목례를 하라는 규칙이 있었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목례의 뜻은 눈짓으로 가볍게 하는 인사라 되어 있지만, 당시 후배들은 선배 앞을 지나갈 때 아예 고개와 허리를 푹 숙이고 다녔다. 서로 간의 존중을 위해 만들어졌을 그 문화는 선배 노릇을 합리화시켰고 그 굴욕적인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어딘가 구석으로 불려 가 선배들이 하는 못된 소릴 들어 마땅한 나쁜 후배가 되는 식이었다.
난 그런 부분에 순응하는 편이었다. 불편해도 큰 불만을 가지진 못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을 그 희한한 학교 복도 풍경의 기억 속에는 에세이 작가가 된 그녀의 옛 모습이 선명하다. 그녀는 복도에서 마주치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왜냐하면 다른 아이들처럼 고개나 허리를 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유의 무표정한 하얀 얼굴로 옆을 지나가면 모른 척 고개를 돌리는 모습도 자주 봤다. 어느 날, 그녀가 자퇴를 신청했다 들었다. 방송 때문에 잦은 결석을 하는 것을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그만두려는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던 것 같다. 음악을 배우는 학교는 일반 학교보다 자유로울 것 같지만, 도제식 교육 탓인지, 선후배 간의 문화를 비롯해 두발 제한, 교복 치마 길이 제한 등 엄격했다. 그런 맥락으로 결석도 허용할 수 없었나 보다, 그 정도 생각하고 말았다.
어릴 때 음악 테이프 하나 만든 줄 알았던 그녀는 알고 보니 <가요톱텐>에서 1위도 하고 방송에 자주 출연했다고 그녀의 에세이를 읽고 알게 되었다. 유명인을 학교에서 모시고 있던 셈이다. 그녀의 책에 그 의문의 ‘자퇴’에 관한 글이 있었다. 자율학습 시간, 귀에 팝송을 꽂고, 교과서 밑에 패션잡지를 몰래 놓고 보다가 선생에게 들켰는데, 선생은 그 잡지로 그녀의 머리를 탁탁 치며, ‘네가 OO이 였으면 다냐?’라고 했다 한다. 그런 폭력이 우리 학교에서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엄격하지만 안전한 곳이라 여겼는데, 팝송이나 패션잡지에 관심 둘 줄 몰랐던 나 같은 아이에게나 해당하는 안전함이었을까? 사실 난 조금은, 그 선생의 심정에 공감이 갔다.
나는 학교라면 대단한 곳인 줄 알았고, 시키는 것을 열심히 해야 했고, 밉보일까 겁냈다. 공부와 악기가 늘 족쇄처럼 나를 얽매니, 성에 찰 만큼 잘하지 못하던 나는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당당할 수 없었다. 큰 일탈 없이 보낸 그때가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 왜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을 떨치지 못한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마음대로 학교를 버릴 수도, 그 학교에게서 제발 다시 다녀달라는 애원을 들을 수도 있었던 그녀의 이야기에서 복잡한 심정이 교차된다.
이후 나는, 그날 서점에서 느낀 강한 감정들에 대해 자주 떠올렸다. 그러면서 차차 알게 되었다. 그것은 질투심이구나. 예쁜 외모나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볼 때, 옅게 느꼈던 마음의 강력 버전, 그것은 내가 경험한 최고의 질투심이었다. 작년에 감정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적어둔 구절을 찾았다. <아티스트 웨이>의 작가 줄리아 카메론의 질투심에 대한 해석인데, 하고 싶지만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이 질투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고 했다. 말하자면 질투심은 내면의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 표지판이라고.
도서관에서 그녀의 책을 다시 찾았다. 그녀 덕분에 만나게 된 놀랍도록 커다란 ‘질투라는 가면'. 그 너머 숨은 내 두려움을 찬찬히 바라보려 애쓰며. 어떤 용기를 내야 하는가 살피며. 에세이들은 정말 잘 쓴 문장들 속에 자기 삶에 대한 열정과 솔직함으로 가득하다. 참으로 배울 점이 많은, 자신 안의 보석을 부지런히 세공해 가는 그녀. 이 책을 내 서재에 두고 매일같이 책등을 바라보아도 동요하지 않을 날이 어서 오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
그것이 지금의 내겐, 최선의 용기라 여겨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