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한 목요일,

리리의 일상다반사

by 리와 리


리리는 곧 공연을 앞두고 있다.

리와 리는 프리랜서 배우 부부로,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공연 전, 오늘이 '평일'의 마지막 휴일이다.

물론 주말에 쉬기는 하지만 평일에 쉬는 건 주말에 쉬는 것과 다르다.

뭔가.. 좀 짜릿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 짜릿함은 눈코 뜰 새 없이 한창 바쁘다가 쉴 때, 느낄 수 있다.

오늘 쉰다는 나의 말에

'리'는 부럽다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연습실로 향했다.


나는 애매한 시간,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를 좋아한다.

도시의 소음이 잠시 비껴간 시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때 비로소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날이 좋을 때는 산책을 하고

날이 추울 때는 목욕탕을 간다.


그래서!

목욕탕에 다녀왔다.

나는 작고 오래된 목욕탕을 좋아한다.

찜질방이 같이 있는 곳보다는

통목욕만 할 수 있는 그런 곳.

멀리서 차를 타고 찾는 곳보다는

동네분들의 사랑방 같은 그런 곳.

길을 지나다 우연히 그런 목욕탕을 발견하면

가슴이 콩닥거릴 정도다.


갔던 곳을 가볼까,

새로운 곳을 찾아볼까

하다가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왜 목욕탕을 좋아하게 됐을까?


어렸을 때는 엄마를 따라

미미공주인형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는 게 좋았다.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인형을 태워 놀고 있으면

엄마가 머리도 감겨주고 때도 밀어줬다.

나는 엄마 손에 내 몸을 맡기고

미미공주는 내 손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나는 엄마처럼 미미의 머리를 감겨주고 비누칠도 해줬다.


그리고 좀 더 자랐을 때는

엄마와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게 좋았다.

엄마 등에 난 볼록 튀어나온 검은 점이

때수건에 밀려 떨어질까 봐 몇 번씩 만지작 거리며

조심조심 때를 밀었던 기억이 난다.

목욕이 끝나면

엄마랑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마셨다.

그게 그날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온전히 혼자이고 싶을 때

목욕탕에 간다.


나는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인데

따뜻한 탕 속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잡생각도 사라지고

근심걱정도 사라지고

들뜬 기분도 사라진다.

그렇게 그곳에 머물러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명상 같기도 하다.



오늘의 여행지



옷을 갈아입고 선풍기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직원분께,

'내가 여기 이십몇 년 오면서 돈 이천 원 써본 거 처음이다!

맨날 오면 사람들 뭐 사주고 때 밀고 그랬는데

오늘은 음료 하나 딱 사 먹네!'


그러더니 곧바로


'아이고, 이따 저녁에 눈 온대! 나 또 팔 부러지기 싫어.

조심해야지.'


직원분은 관심을 가지며 묻는다.

'눈 온대?'


'응.'


'지금?'


'이따 저녁에.'


'지금 와?'


'아니, 내가 지금 목욕탕에 있는데 지금 오는지 안 오는지 어떻게 알아.

나 여기 아까 2시에 왔을 때는 안 왔었어.'


이 대화에 나는 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빨래를 하려고 베란다에 나갔는데

사방이 소복 눈으로 쌓였다.


'리'에게 문자를 남겼다.

온 세상이 하얗다고.

'리'는 너무 아름답지 않냐면서,

이따 함께 옥상에 올라가든 밖으로 나가든 하잔다.

그래서 나는 좋다고 했다.

우리 사진도 찍자고.

빙그레 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