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멘 리리
얼마 전 전시를 보러 제주도에 다녀왔다.
작가님의 작업에 한 조각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워낙 좋아하는 분이라 제주로 향한 것.
('리'는 일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했다)
제주에 가면 안정감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저릿저릿하다.
나에겐 고향 같은 곳이다.
이십 대 후반, 3월.
친구와 한라산 등반을 위해 제주를 찾았다.
공항 근처 여성전용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는데 어찌나 아늑하고 좋던지
이런 곳에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엇보다 개들이 있었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
몇 개월 후,
사장님께 연락을 해 스텝을 안 구하냐고 물었고
사장님은.. 오케이를 했다.
그렇게 나의 제주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때 당시 제주의 많은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일이 꾸려졌다.
무급으로 숙식을 제공받으며 일과 여행을 함께 하기도 하고
얼마간의 지원금을 받으며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매니저라는 직함을 달고
숙식을 제공받으며 일을 했다.
일주일에 하루 휴무였고
월급도 받았다.
무려 백만 원!
게스트하우스에서, 그것도 타지에 살면서 일을 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로 향했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는 일은 손님들 방 청소와 화장실 청소, 주기적인 이불 빨래 등.
특히 개 두 명이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사장님은 청결을 강조하셨다.
(개들은 방을 제외하고는 테라스와 거실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곳은 사장님의 집이자 일터였는데
사장님은 나에게 방을 내어주고 자신은
거실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나는 열심히 했다.
원하는 곳에서 산다는 게 그저 좋았다.
그리고 '혼자' 일을 하는 게 적성에도 맞았다.
너저분한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
창틀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것,
화장실에 양말을 벗고 들어가
물줄기로 구석구석을 씻어내는 것,
건조기에서 꺼낸 따뜻한 수건과 옷가지들을 가지런히 개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앞서
일어나자마자
개들의 똥과 오줌을 치우는 것이 좋았다.
개들은 보더콜리로 형제이다.
이름은 멍이와 청이.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나는 한 번도 이름을 동시에 불러본 적이 없다.
아주 작았던 시절부터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는 멍이와 청이는
사랑이 많고 다정한 친구들이다.
멍이, 청이가 있어서 제주살이가 외롭지 않았다.
사장님한테 산책은 얼마나 하냐고 여쭤보니
바쁘고 힘들어서 자주는 못한다고 했다.
이런..
나는 그 뒤로 멍이, 청이와 함께 산책을 했는데
혼자서 덩치 큰 두 친구는 조금.. 힘들긴 했다.
밖에 나가면
멍이는 혀가 쭈욱 나와 헤헤 웃으며 몸이 앞섰고
청이는 고개를 갸웃,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생각이 앞섰다.
속도가 다른 두 형제와의 산책은 가끔 왁자지껄하고
가끔 소란스럽고 자주 웃었다.
아참, 둘은 겁이 많았다.
사장님은 마음에 걸렸는지
아침에 멍이, 청이를 데리고 운동삼아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아주 흡족해했음)
나는, 때로는 손님들과 함께 멍이, 청이와 산책을 하기도 하고
제주에 놀러 온 지인과 함께 산책을 하기도 했다.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나면
어느덧 손님을 맞이할 시간이 된다.
온전한 나의 시간은
모든 일과가 끝난, 늦은 밤
내 작은 방에서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진지하게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텐트 생활이 너무 힘들기도 하고 내 공간이 없기도 하고.
근처에 원룸을 잡아서 생활하는 게 어때?'
월급을 받기는 하나, 원룸을 잡아서 생활을 하게 되면
분명 마이너스가 될 것 같았다.
나한테는 충당할 여유돈이라는 게 없었다.
서울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사장님이 숙식제공해 주신다고 해서 내려왔어요.
원룸에서 생활할 거면 여기서 일 안 하죠!'
사장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알겠다고 했고 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바다가 있는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숙소를 찾았다.
늦은 밤이 되면 그녀는 가끔 거실에 있는 내게
다가와 자신의 속 얘기를 꺼내놓았다.
남자친구 얘기부터 개인적 고민까지.
그때마다 잘 들어줬는데
마지막 밤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얘기 들아줘서 고마워요, 언니.
친구들한테는 하지 못 할 말이에요.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한 번 보고 말 사람한테 얘기하는 게 나아요.'
'한 번 보고 말 사람'이라는 말에
살짝 상처받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핑을 왔다는,
짧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그녀는
미군부대 내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민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팔뚝에 새겨진 커다란 꽃에 시선이 갔다.
그녀는 외국에서 살고 싶어서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거라고 했다.
스타벅스 매뉴얼은 다 비슷하니
어디를 가든 살 수 있다고.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말로 영어가 늘었단다.
처음 본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말도 재미있게 하는 그녀는,
지금쯤 어디에 살고 있을지
가끔 궁금하다.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그녀는
이곳저곳의 호텔을 돌아다니며
호텔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찾아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호텔을 숙소로 잡아준다고 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 거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멋지다고 했다.
'저는 언니가 부러워요.
자유롭게 살고 있잖아요.'
내 생활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건, 그들은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나는 돌아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곧 여행이 끝나는 사람들의 아쉬움 같은 것.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와,
내게 남기고 떠났다.
의사인 그녀는 자기가 정말
원해서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고민이 많았고
직장을 그만뒀다는 그녀는
곧 영국으로 워홀을 떠날 거라고 했다.
내게 심리상담을 해주던 그녀는
남자친구의 집착이 힘들다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사장님이 술을 드시고
내게 상처되는 말을 해버렸다.
나는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볼멘소리 몇 마디로 마음을 숨겼지만
그 말은 끝끝내 소화되지 않고
자꾸만 나를 울컥울컥 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일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멍이와 청이와 헤어지는 게 아쉬웠지만
사장님과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사장님도 내가 떠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해 겨울,
사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번아웃이 와서
떠나야 할 것 같다고.
이 주정도 숙소에 머물면서
일을 도와줄 수 없냐고 했다.
사장님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멍이와 청이가 보고 싶었다.
나는 다시 제주로 내려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글쎄 멍이와 청이가 고개를 몇 번 갸우뚱하더니
입이 헤 벌어지면서
낑낑 소리를 내면서,
내 주변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다
품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 힘에 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그때 눈물이 살짝 났었다.
나를 기억해 준 게 고마워서.
사장님은 동남아로 떠났고
숙소에는 나와 멍이, 청이만 남았다.
그 해 눈이 어찌나 많이 내렸는지
잦은 결항으로 손님도 별로 없었다.
발목이 푹푹 잠기던 겨울,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아침마다
나는 멍이와 청이와 함께
뒷산으로 갔다.
눈 밭을 전속력으로 달리는
멍이와 청이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여전히 겁은 많아서
멍아! 청아! 하고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온다.
자신들의 눈에
내가 보이지 않으면
역시 나를 찾아
쏜살같이 달려온다.
한바탕 놀고 나면
나는 커다란 수건으로
두 친구의 털을 말려준다.
그게 우리의 아침 일과였다.
사장님은 절대 방에 멍이와 청이를 들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나는 작은 내 방에서 멍이, 청이와 함께 잤다.
외롭지는 않았지만
밤이 무서웠다.
(나 역시 멍이와 청이처럼 겁이 많음)
밖에서 나뭇가지로 톡톡 쳐도 열릴 대문이었기 때문에..
나는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멍이, 청이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누군가의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사장님은 동남아에서 돌아왔고
나는 멍이, 청이와 작별인사를 하고
제주를 떠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