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좋아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디자인
이 글은 꾸준한 성장 기록이나 자기계발을 잘하고 있다고 보여주려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작심삼일을 반복하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턱 끝까지 몰려서야 겨우 실행에 옮기려 발버둥치는 기록에 가깝다.
올해 초 다짐했던 계획들은 예상대로 순탄하지 않았다.
조급함, 미루기, 망설임 끝에 “이젠 정말 안 되겠다” 싶은 마음으로 나와의 약속을 다시 시작한 상반기.
벌써 6월, 그리고 7월.
반년이 흘렀고, 나는 이 시간을 돌아보며 글을 쓰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주변에서는 종종 잘 그린다고 했고, 미술대회에 나가 상도 몇 번 받았고, 그래서 크게 고민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미대를 선택했다. 내가 잘하는 게 그림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림을 좋아했고, 그림을 계속 그리면 될 거라 생각했다. 미대에 진학하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림 그리는 일’과는 조금 달랐다.
디자인과 수업은 손으로만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컴퓨터를 다루고 기획을 하고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과정이 대부분이었다.
디자인이 뭔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잘 와닿지 않았다. 툴을 배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도비 프로그램은 처음이었고, 과제마다 새로운 기능을 익히느라 늘 허덕였다.
특히 2~3학년 때가 가장 힘들었다. UI/UX가 한창 뜨던 시기라, 나는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전공을 선택했다. 그 선택 이후로는 컴퓨터와의 싸움이었다.
머릿속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제 작업물로 구현하는 일이 늘 어렵게 느껴졌다.
툴을 익히는 것도,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레퍼런스를 찾아가며, 책을 보며, 마감에 맞춰 겨우 제출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 시절엔 과제를 잘하는 복학생 선배들이 늘 부러웠다.
늘 A+을 받아내는 결과물 속에서 나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다.
사실 그 선배들도 뒤에서 얼마나 노력했을지 잘 알고 있었지만, 어린 나는 결과만 보고 위축되곤 했다.
3학년 때는 거의 매일 밤샘을 했다.
학교 과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새벽까지 과제를 하며 멀고 먼 미래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 시간들이 힘들면서도 이상하게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4학년 졸업을 앞두고는 ‘내가 정말 디자인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서 1년을 휴학했고, 돌아와서는 인턴 생활을 하며 겨우 졸업 작업을 끝냈다.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애니메이션과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자주 했다.
툴툴거리며, 울며불며 과제를 했던 시간들이 많았다.
결국 전공 과목에서 A+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
점수를 잘 받기 어려운 과였고, 그 안에서 나는 그저 겨우겨우 과제를 끝내는 학생이었다.
그 대신 동아리 활동이나 과 행사 준비에 더 적극적이었다.
덕분에 대학 생활 자체는 나름 즐겁게 보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사실 나는 디자인이라는 전공에 그렇게 큰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림은 좋아했지만,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깊게 알고 선택한 건 아니었다.
주변 친구들은 다들 관심도 많고 열심히 했다.(이건 내가 봤을땐 그래보였다.)
그 안에서 나는 그저 뒤처지지 않으려고 따라가려고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졸업을 앞두고는 ‘디자인은 자신이 없다’며 “나는 기획 쪽으로 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디자인을 잘 아는 것도, 툴을 잘 다루는 것도 아닌 상태로 어찌어찌 졸업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돌고 돌아 결국은 디자이너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그 이후의 이야기다.
졸업 이후 10년,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변화의 기록을 다음 글에서 이어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