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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히르 Mar 12. 2017

#000, 시코쿠로 출발~

귀한 인연의 시작!

2015년 10월 13일 오사카를 거쳐 도쿠시마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다카마츠까지 아시아나 직항노선도 있지만 비싸기도 하고 어차피 다카마츠에서도 도쿠시마로 이동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 오사카를 거쳐 가기로 했다.


여행을 아무리 좋아해도 공항의 시끌벅적하고 분주하고 지루하거나 때로는 헐레벌떡해야 하는 분위기는 쉽게 익숙해지질 않는다.

오롯이 혼자서 해야 하는 긴 여행, 내 인생의 무게같은 13kg 거대한 배낭, 살짝 기분나쁜 왼쪽 무릎 관절, 심란한 마음으로 이스타항공 ZE613편 윈도우싵 11A에 앉아 창밖을 본다.

비행기는 여의도를 지나고, 잠실을 지나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를 지나 동해쪽으로 다가간다.


따뜻하고 안락한 집을 남겨두고 왜 나는 매일매일 잠자리가 제일 걱정인 불안한 한뎃잠에 목말라 하는 걸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고단한 여행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걸까.

이 여행의 끝에선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최소한의 바람은 이 여행이 나를 성숙시켰으면 하는 거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쉰을 앞두고도 여전히 미성숙한 아이로 남아있는 나. 어쩌면 이번 여행은 이제는 아이가 아니란 걸 증명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낯선 곳에서 침잠하지 않고 타인에게 먼저 미소와 인사를 건네보려고 한다.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타인을 알아가고 인정하는 법도 배우고 싶다.




어느새 오사카에 닿았다.

비행은 예상보다 살짝 늦어져서 도쿠시마행 4시10분 버스를 놓치고 만다.

버스티켓 발권기에서 표를 끊는데 인터넷에서 조사한 4천엔보다 100엔이 올라있다.

한시간이나 기다려야 하기에 버스홈인 2번 안쪽 공항 라운지 벤치로 다가가니 웬 중년여성이 앉아서 스마폰을 하고 계신다.

그런데 많이 낯익은 모습이다.

시코쿠든 산티아고든 순례여행을 계획한 건 오래 전이다.

2011년 남미를 갈 때에도 시코쿠를 계획했다가 겨울여행이 되는 바람에 짐이 무거워진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남반구인 남미를 향했었으니.

관심있는 건 눈에 잘 띈다고 그 전해에도 중국으로 출사여행을 가는  동안의 기내 잡지에서 시코쿠 오헨로 순례길의 88사찰 중 유일한 외국인 여자 주지스님이 계신 13번 절 대일사와 그 주지스님인 한국인 김묘선 선생님의 특집기사를 읽은 적이 있고, 이번에 여행을 계획하면서 조사한 인터넷 자료에서도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보아왔는데 웬지 모르게 김묘선스님같다는 느낌이 드는 그 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에 말도 못걸고 같은 벤치 옆 끝자락에 앉아 스마트폰에다 일본 유심칩을 갈아끼운 후 통화를 했다. 도쿠시마역의 토요코인호텔에 약속했던 체크인 시간보다 한시간쯤 늦겠다고, 한국에다가는 무사 도착을 알리는.

통화하는 걸 듣고 옆에 계시던 그분이 한국인이냐며 말을 거신다.

아니나다를까 김묘선스님이 맞단다. 이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그 많은 순례자들이 한번쯤 뵙고 싶어도 대일사에서조차 잘 뵐 수 없었다는 그 분을 첫날 오사카 공항에서 뵙게 되다니...


버스시간이 되어갈 무렵 화장실을 가는 듯 자리를 뜨신 그 분께서 편의점을 다녀 오셨는지 맥주와 안주거리를 한 보따리 사오셨다. 초면이라 서먹하니 버스에서 맥주나 마시면서 가자신다. 낯을 가리는 나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간사이공항에서 도쿠시마역까지 두시간 동안 버스안에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 분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 가족사, 고 이매방 선생님의 승무교육전수조교로서의 열정적인 삶까지.

캔맥주를 그분이 두 캔, 내가 처음 마셔보는 폭탄맥주 하이볼에 꽂혀서 염치불구하고 세 캔이나 비우는 동안, 앙증맞은 버스 화장실도 다녀오는 동안  어느새 도쿠시마역에 닿았다.

순례여행이니 13번 절에도 들를 터, 이삼일 뒤의 재회를 약속하고 아쉽지만 그분은 대일사로, 나는 토요코인으로 향했다.



이제까지 늘 든든한 그 무엇이, 누군가가 나를 지켜 줬듯이 이번 여행에서도 수호천사든 카미사마든 오헨로의 그 코보대사든 나와 함께 해 줄 거란 믿음이 강력해졌다.




공항버스(간사이공항->도쿠시마역) 4100엔

토요코인호텔 594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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