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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eroon Aug 22. 2024

high and low

ghost blurr

눈을 감으면 미세한 알갱이들이 몰려 날아다닌다. 소란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들이 있는 반면에 유유자적하며 여유로움에 주저함이 없는 것들도 보인다. 암실_두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시간. 그리고 조금씩 멍청해지는 모드를 설정한다. 얼굴과 두피의 신경이 느슨해지는 중이다 여기며 눈코입을 순서대로 움직인다. 안면 근육을 일깨운다. 한 톨이 빙빙빙 맴돌며 이륙한다. 미지의 알갱이들이 지속적으로 빛과 부딪히며 만나고 흩어지기를 멈추지 '안아' 만들어내는 빛그림. 수조에서 방금 건져 올린 흑백사진을 암실 밖으로 가지고 나갈 때마다 작은 설렘이 일어나곤 하는데, 그게 붙잡아온 괴물(같은 사진)을 앞에 두고 가만히 눈동자를 맞추며 들여다보는 즐거움 때문이라 말할 수 있겠다. 감탄사를 내뱉거나, 큰소리로 끔찍한 질문을 쏟아내거나, 미처 알아채지 못한 섬세한 모습에 깜짝 놀라 웃어버리는 순간들까지. 수동모드로 촬영하다 보니 노출값, 셔터속도와 조리개값이 맘대로다. 감각이 이끄는 대로 버튼과 링을 돌리며 빛과 어둠의 높낮이를 믹스 앤 매치, 디제잉한다. 폭이 깊거나 드라마틱한 밝음과 어둠의 대비보다는 적당히 가라앉고 끝까지 섞이기를 거부하고 저항하며 조용히 외치는 듯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grainy noise


이랬다 저랬다 변덕 같은 마음, 더 이상 거슬리지도 않아. 갑작스럽게 비가 퍼붓는다면? 젖거나 말거나 걷는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나간다. 비가 그칠 때까지 '서서' 기다린다. 새 우산을 또 산다. 톨의 무탈한 착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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