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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과 Oct 03. 2018

여행, 안가도 괜찮아

머피의 법칙은 모두에게 공평할지도

갑자기 떠난 여행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일주일도 안남은 백수의 삶을 이렇게 놓칠 순 없다며 갑자기 예매한 정동진 밤기차는 보기좋게 놓쳤다. 다음날 아침 첫차에 앉자마자 커피를 사지 않았다는걸 깨달았고 도착하는데 5시간이 넘게 걸린다는걸 그제서야 알았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는걸 깨닫자, 기분이 빠르게 불안해졌다.




가서 뭘 할지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5시간이상 걸리는 기차를 선택한건 잘한것일까.

밤차였다면 이 긴 시간이 고마웠을텐데. 어제 큰 실수를 한게 아닐까.

하다못해 날씨도 아쉬운데. 오늘 아침은 맑은데 놓쳤고 내일은 구름예보가 있다고 하던데.


오는 차에서 이 멍청한 짓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른 차편을 알아봐야하나 고민하고있던 차에 검표원이 말을 걸어 내가 자리를 잘못 잡았다고 말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난 이번 여행을 실패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데.



퇴사하고 한달이 조금 안되는 기간동안 나름대로 다음 스텝을 위해 바쁘게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긴 휴식에 여행은 반드시 해야할 일인것 같았다. 

달리 말하면 여행을 가지 않으면 휴가에 실패하는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쫒기듯 급작스레 시작한 여행은, 꼬였다. 머피의 법칙이다. 시작부터 꼬였다.





머피의 법칙은 사실 모두에게 공평할지도



머피의 법칙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렇다.


잘못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잘못된다

Anything that can go wrong
will go wrong


뭐에 꽂혀서 한건진 모르겠지만, Joel Pel 이라는 사람은 머피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정리해서 머피방정식을 만들었다.


머피 방정식



복잡해보이지만 뜻은 별건 아니다. 뭔가 잘못될 확률인 머피확률(P_M)은 일이 중요하고, 복잡하고, 긴급할수록 (Importance, Complexity, Urgency)높아진다는 뜻이다.


이번 여행은 그 세박자를 잘 맞추고 있다. 젠장.  쉬는동안 반드시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 여행계획이라는건 원래 복잡한 일,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자마자 허둥지둥 떠난 긴급함. 그러니 머피의 확률이 높아질만 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머피는 실존인물이다. 그런데 많이들 오해하는 점은 머피의 인생이 꼬일대로 꼬였었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머피의 법칙을 탄생시킨 실험 참가자들. 존 폴 스탭은 가운데 검은옷을 입고있는 사람이다. 출처 : EAFP history office

머피의 법칙은 일이 죄다 잘못된다는 짜증을 말하는게 아니다. 머피는 엔지니어로 미 공군 대위(captain)이었던 에드워드 머피이다. 부하의 어이없는 실수로인해 실험 데이터가 잘 안나오자 "저놈은 잘못될 수 있는건 죄다 잘못해"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후 자기들끼리 이를 머피의 법칙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머피의 법칙이 대중에게 유명해진 계기는 존 폴 스텝이라는 공군이자 물리학 박사의 기자회견이다.


존 폴 스텝은 기자회견에서 실험과정에서 심각하게 다친사람이 없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존 폴 스텝은 그 답변으로 ‘머피의 법칙'을 소개했다. 잘못될 수 있는건 반드시 잘못된다. 그래서 잘못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점검한다. 고 말한것이다.


즉, 머피의 법칙이 시사하는 바는인생이 망한다'가 아니라 ‘제대로 준비 안하면 망한다. 그러니 전부 대비해야 사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머피의 법칙은, 모두에게 꽤 공평할지도 모른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내 인생이 유달리 꼬이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사실은 남의 인생도 비슷하게 꼬일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꼬인 인생 ≠ 실패


그래서 꼬인 여행은 어떻게 되었을까. 움직이는 열차에서 비틀비틀 자리를 옮기자 적적하셨던 옆자리 할머니께서 껌을 하나 주셨다. 반가운 쥬시후레쉬. 조금 진정하니 창밖이 보였는데, 태어나서 처음 보는 짙은 안개가 펼쳐져 있었다. 고개 사이로 난 길은 금새 안개 뒤로 숨고, 안개가 피어오르는 개천 위에는 작은 구름들이 떠있었었다.



장관이다 못해 비현실적이라서 서울촌놈은 눈을 의심하며 한참 창문에 코를 박고있었다. 

그늘진 마을은 안개로 뒤덮여있는데, 또 해가 비치는 마을은 안개가 옅어지기도 했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계속해서 다른 세상이 나왔다.




꼬였지만, 실패는 아니구나. 꼬일대로 꼬여서 썩 멋진일이 다시 생길수있구나. 좋다. 이제 조금 더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쫒기듯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도, 찜찜하고 잘못된 선택도 앞으로는 괜찮지 않을까. 밤기차나 ktx보다 멍청하기 그지없는 무궁화호 첫차가 보여줬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청함도 나름대로 가치있었을거라는 것이다. 없으면 없는대로 뭐 어떤가.


이번 여행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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