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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과 Feb 05. 2019

역사상 가장 긴 과학실험 -2 안될놈은 안된다

아니 52년을 기다렸으면 한번쯤은 볼 수도 있잖아..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의 토머스 파넬, 존 메인스톤, 앤드류 화이트

Thomas Parnell, John Mainston, Andrew White of the University of Queensland, Australia




(이전 글)

역사상 가장 긴 '과학실험'-1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이전 글에서는 정말 고체같아보이는 딱딱한 물질, 사실 액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1927년 설치된 깔때기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1927년부터 지금까지, 딱딱한 타르(피치, ptich)는 계속 아주 조금씩 흐르고 있습니다.

9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깔때기 아래로 떨어진 피치 방울은 단 9방울입니다.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itch_drop_experiment_with_John_Mainstone.jpg


이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실험, 최대의 관심사는 이 방울이 언제 떨어지나 인데요. 놀랍게도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을 관찰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백년 가까운 시간동안 장치를 관리한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누가 100년 가까운 시간동안 실험 장치를 지켰을까요? 차례로 토머스 파넬 교수, 존 메인스톤 교수, 앤드류 화이트 교수입니다. 두 번째 관리자였던 존 메인스톤 교수는 1961년부터 자그마치 52년간 이 실험을 관리했습니다. 피치방울과 인생을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퀸즐랜드 대학에 따르면 피치 방울이 떨어지는 9번의 순간을 본 사람은 공식적으로 아직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52년간 한 번도 피치방울 낙하 순간을 보지 못한 존 메인스톤 교수의 이야기가 가장 안타깝습니다.


존 메인스톤 교수가 이 실험을 관리하는 동안 피치 방울은 총 3번 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1979년 4월이었습니다. 뉴욕타임즈에 보도에 따르면 존 메인스톤 교수는 토요일에 피치 방울이 잘 달려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곧 피치방울이 떨어지겠다고 예상하고 주말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피치 방울은 주말 사이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첫 번째 기회를 놓친 존 메인스톤에게 다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988년 피치방울이 떨어지던 날, 존 메인스톤은 실험장치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피치 방울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던 이 자는, 문득 차 한 잔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자리를 뜹니다. 피치 방울은 자리를 뜬 15분 사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세 번째 기회는 2000년에 찾아왔습니다. 이 때는 카메라라는 신기술까지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2000년 11월 8번째 방울이 떨어질 때, 기가 막히게도 카메라에 문제가 생겨 낙하 장면을 잡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존 메인스톤 교수는 한 번도 낙하 순간을 보지 못하고 2013년, 세상을 떠납니다. 


그렇다면 9번째 방울은 어땠을까요?


9번째 피치방울은 8번째 방울에 닿아버렸습니다ㅠㅠ 출처 : https://youtu.be/BZvsrOciU_Q


존 메인스톤 사후에 떨어진 9번째 방울은 8번째 방울이 떨어질 때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생긴 긴 꼬리에 닿아버렸습니다. 따라서 피치 방울은 똑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내려앉았기 때문에, 이 때는 똑 떨어지는 순간이 아예 없었죠.




왜 거기서 나와...


피치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은 엉뚱한 곳에서 포착됩니다. 아일랜드에 있는 트리니티 대학교입니다. 네이처 뉴스에 따르면, 트리니티 대학의 한 실험실 캐비닛에서, 누가 설치한 건지 알 수 없는 피치 낙하 실험장치가 하나 발견됐습니다. 깔때기에 ‘OCT 1944 (1944년 10월)’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에, 이를 발견한 과학자들은 69년째 묵묵히 무인 실험을 하고 있다가 발견된 새로운 피치 낙하 실험 장치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트리니티 대학교의 물리학자 셰인 베르긴을 비롯한 동료들은 이 실험 장치를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2013년 4월부터 이 실험 장치에 웹캠을 설치해 녹화를 시작했고, 약 세 달 후인 지난 7월 11일 오후 5시경 피치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트리니티 대학에서 잡아낸 피치 방울 낙하 순간! 출처: https://youtu.be/yCj5krgpX9M


존 메인스톤 교수도 당시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트리니티 대학 팀에 축하도 보냈다고 합니다. (눙물...)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함께한 시간이 길면 생기는 에피소드도 많이 때문인지, 이 실험에서는 웃픈 사건들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첫번째 방울이 떨어졌을 때부터 1988년 7월 7번째 방울이 떨어졌을 때까지, 이때까지만 해도 피치 방울들은 8~9년에 한번씩 비교적 일정하게 떨어졌습니다. 과학자들은 피치 방울 낙하 실험으로 알아낼 것들은 충분히 알아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액체인 것도 밝혔고, 점도도 물의 200억 배라고 구했으니, 사실 할 수 있는건 다 했나 싶었겠죠. 그러나 이때부터 피치낙하 실험장치에는 이상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최첨단 장비의 등장...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밀레니엄! 2000년 11월에 떨어진 8번째 방울은 떨어지는데 12년 4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이전의 8~9년에 비하면 훨씬 긴 시간이죠.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시원한건 좋긴 한데.. 출처: pixabay


퀸즐랜드의 과학커뮤니케이터 앤드류 스티븐슨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추측했습니다. 첫 번째로 깔때기 안에 있는 타르의 양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아래로 누르는 압력이 줄어들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피치 방울 낙하 실험장치가 있는 건물에 에어컨이 설치됐기 때문에 피치의 점성이 더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점성이 증가했다는 증거로, 이전에 떨어졌던 피치 방울들보다 8번째 피치 방울의 크기가 컸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건 또 예상 못했네


9번째 방울은 앞서 말한 것처럼 8번째 방울이 떨어질 때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생긴 긴 꼬리에 닿아버렸습니다. 따라서 피치 방울이 똑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내려앉아서, 떨어지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할 수 없었습니다.

9번째 피치방울은 8번째 방울에 닿아버렸습니다ㅠㅠ 출처 : https://youtu.be/BZvsrOciU_Q

9번째 방울이 내려온 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앤드류 화이트 교수는 아래 비커를 비웠습니다.


이번엔 또 최첨단 라이브 스트리밍 때문에..


이제 세계는 10번째 방울의 낙하를 평화롭게 기다리게 될 줄 알았습니다만, 아직 낙하하지 않은 10번째 방울은 또 너무 빨리 커졌습니다. 점성은 이전에 계산했던 값보다 약 10배정도 줄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에 대한 분석도 두 가지입니다. 먼저 1984년의 연구에 따르면 피치의 점성은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점도가 10배정도 커져도 별 문제는 없다는 관점입니다.


 두 번째로, 조명 때문에 온도가 올라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피치 방울은 2000년 8월부터 매 순간 카메라에 찍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0년 4월, 밤에도 촬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조명이 설치됐습니다. 이 조명에서 발생한 열이 온도를 올리고 타르를 데워 점성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전체 실험 장치는 유리로 된 케이스로 덮여있기 때문에, 온실효과로 인해 내부 온도가 더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뜨거웠다고 합니다 ㅠㅠ 출처: pixabay


따라서 현재는 열을 내지 않는 LED조명으로 바꿨고, 다시 실온에서 피치 실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1927년 시작한 이 실험은 지금까지도 끊임없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셈입니다. 


다음 기회는?


과학자들은 퀸즐랜드의 타르 10번째 방울이 2020년에 떨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간단한 실험과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우리에게 알려준 사실들은 정말 많습니다만, 무엇보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을 남겼습니다.


현재 피치 드롭 실험을 관리하는 앤드류 화이트 교수. 출처: youtube/thePitchDrop

지금 피치 낙하 실험기구는 퀸즐랜드 대학의 앤드류 화이트 교수가 관리 하고 있습니다. 토머스 파넬 교수부터 존 메인스톤 교수, 그리고 지금의 앤드류 화이트 교수까지 세 교수가 실험을 물려받아 온 덕에, 피치 방울 낙하 실험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실험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기네스북에서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이 유명한 실험이 앞으로 100년간 더 지속될 수 있을 만큼, 깔때기 안에는 충분한 양의 피치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100년간 이 실험기구가 유지될지, 또 무슨 돌발상황이 생길지, 그리고 다음 10번째 방울은 카메라에 잡힐지 등 많은 것들이 기대가 됩니다.


피치는 지금도 천천히 흐르고 있습니다. 퀸즐랜드 대학교의 파넬 빌딩(Parnell Building)을 방문하면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Edgeworth, R., B. J. Dalton, and U. T. Parnell. "The pitch drop experiment." European Journal of Physics 5.4 (1984): 198.

http://www.uq.edu.au/news/article/2014/11/explainer-pitch-drop-experiment

https://smp.uq.edu.au/pitch-drop-experiment

https://www.theatlantic.com/technology/archive/2013/07/the-3-most-exciting-words-in-science-right-now-the-pitch-dropped/277919/

https://nypost.com/2013/08/27/professor-in-charge-of-famous-pitch-drop-experiment-for-50-years-dies-waiting-to-see-it-in-action/

https://physicsmuseum.uq.edu.au/famous-pitch-drop-experi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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