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보내는 마음, 기부.

by 이손끝


돈은 흘러야 한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한단다.

저축만 해선 안 된다고,

은행에 묻어놓은 돈은 제자리걸음이라며

투자하고, 재테크하고, 불려야 한다고.


나도 그렇게 배웠다.

돈은 움직일 때 살아 있는 거라고.

숨처럼 들고 나고,

강물처럼 돌고 흘러야 생명을 가진다고.


그런데 나는,

그 배움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흘려왔다.


나는 수익의 일부를 기부한다.

고정비처럼 빠져나가는 금액.

누군가는 보험이라 하고,

누군가는 낭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그 돈을,

나는 ‘사람’에 넣는다.


아동 기관,

환경 단체,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 후원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한 달에

내 수익의 일부가 닿는다.


신랑은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젓는다.

"차라리 너 이웃을 도와.

가까운 친척이라도,

그게 남는 거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신랑은 타인의 보살핌을 거의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다.

어릴 적,

문을 두드려도 열리는 문이 없었던 아이.

한 겨울, 장판도 덜 데워진 방바닥 위에서

고요하게 버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던 아이.


나는 조금 달랐다.

나도 불우했고, 가난했고,

희망이라는 단어보다 자존심을 먼저 배운 시절이었지만

가끔씩 문이 열렸다.

정기적으로 쌀이 배달되었고,

식료품 박스를 안겨준 낯선 손들이 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포장지 안에 섞여 있던 희미한 설렘을.

세상에 아직 포기하지 않은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도움으로 배웠다.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마음속으로 작게 맹세했다.

‘나도 어른이 되면, 누군가를 도와야지…’


그리고 이제,

그 작은 맹세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내가 가진 것을

그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게 오는 돈이,

나를 통과해 누군가에게 닿는 구조.

그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따뜻한 형태의 ‘재테크’다.


그건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가능성을 키우는 투자다.

내가 사는 나라에

좋은 시민 한 명이 생기는 일.

상처받지 않은 아이 한 명이 자라나는 일.

낙담 대신 도전을 택하는 청년이 하나 늘어나는 일.


나는 그런 식의 부유함을 택했다.


마음이 부유한 사람.

갖지 못한 걸 아는 사람.

그래서 더 나누고,

그래서 더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가끔은 나도 걱정한다.

경제 뉴스에서 쏟아지는 숫자들,

오르내리는 이자율,

혹시나 쌓아둔 게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

숫자를 다시 세보는 날도 있다.


하지만 묻고 또 물어본 끝에

나는 늘 같은 답에 도착한다.


나는 마음부자다.

내가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라,

흘릴 수 있어서.


그리고 언젠가,

그 흘림이

내 아이의 삶을 덜 두렵게 만들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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