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배우기로 했다.

by 이손끝


나는 배움이 곧 성장이라고 믿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자

미래를 위한 선행투자.

그래서 관심 있는 것은 배웠고,

또 배웠다.

그중 일부는

남편 몰래 들은 강의들이었다.


카드값이 무겁지 않았던 시절엔

별 죄책감도 없었다.

매출은 괜찮았고,

이 정도는 나를 위한 투자니까 —

‘내가 나한테 이 정도도 못하나?’

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학원, 세미나, 온라인 클래스, 코칭, 워크숍…

이력서에 적히지 않는 배움들이

내 통장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니, 빠져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의 회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돈이 줄고,

불안이 커지고,

내가 결제했던 강의료가

하나씩 ‘잘못된 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현타.

정말 말 그대로였다.


나를 위해 쓴 돈이

언제부턴가

나를 속인 돈처럼 느껴졌다.

배움이 아니라

불안을 잠시 덮는 무언가였단 걸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 몇 백, 몇 십이

더 이상 '성장'이 아니란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내 안에는

쓸쓸한 흉터처럼

열심히 공부한 영수증만 남아 있었다.

그 지식은 어디로 갔을까.

나를 진짜 단단하게 만들었을까.

내가 정말, 배우고 싶었던 걸까.


나는 그게

‘거짓 성장’이었다고

이제서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올해는 다짐했다.

아무리 배우고 싶어도

돈을 쓰지 않겠다고.

이제는 멈추기로 했다.


배움과 성장을

그렇게 상품처럼 사들였던 지난 시간 대신,

나는 지금

고요하게 묻고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진짜 가고 싶은 방향이 어디인지.

진짜 나를 위한 시간은 어떤 모습인지.


누군가는 말한다.

“배움을 멈추면 퇴보야.”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배움을 핑계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

더 깊은 퇴보였다는 걸.


그래서 나는

배움을 멈추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내 안에 조용히 침잠하기로 했다.


그게 지금,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성장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무엇을 배우게 된다면

그건 더 이상 두려움에서 비롯된 소비가 아니라

선명한 나로부터의 선택이길 바란다.


나는 쉬어간다.

하지만 멈춘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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