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것도 없으실 텐데 제가 도울게요.

by 이손끝


통자석 시트지였다.

크고 무겁고, 잘못 찍히면 도무지 쓸 데가 없어

그 자체로 짐이 되어버리는 그런 물건이었다.

그런 게 대량으로 찍혀 나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주문서를 잘못 봤다.

눈은 지나치게 빨랐고, 손은 성급했으며

확인이라는 절차는 어딘가에서 빠져 있었다.


박스째로 도착한 자석들을 열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차.

이건 아닌데.


마음은 얼음물처럼 식고

책상 아래로 쑥 내려앉고 싶었다.

그러다 재빨리 인쇄소에 다시 발주를 넣었다.

늦지 않게만 하자.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수습하자.

나는 죄송하다는 말보다 행동이 빠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전화가 걸려왔다.

인쇄소 사장님이었다.


“같은 거 또 들어왔는데, 같은 건가요?”

그 물음 뒤엔

이미 반쯤 눈치챈 기색이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사정을 설명했다.


“제가 주문서를 잘못 봤어요.

그래서 다시 넣었어요.”


사장님은 잠깐 말이 없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장님, 남는 것도 없겠네요. 그럼 이건 저희가 반 도울게요.”


그 말은

거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기억엔 남는데, 크게 울리지 않는

그런 말투였다.


나는 얼떨떨했다.

명백히 내 잘못이었기에 요청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책임지려 했을 뿐인데

그는 먼저 마음을 건넸다.


내 실수라고 말했지만

사장님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일이란 게 그런 거죠.

다 잘하려고 해도 틀릴 때가 있고,

장사해서 남겨야죠. 사장님이 잘 돼야 우리도 잘 되죠.”


그날 이후

나는 사장님이 취급하시는 품목이 있으면

제일 먼저 연락을 드렸다.

작은 주문 하나에도

먼저 견적을 여쭸다.


그건 의리나 감정보다는

기억에 가까웠다.

한 번의 따뜻함이

사람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지,

나는 그날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그 일이 있던 계절을 기억한다.

창고 앞에 석양이 길게 들던 날,

포장지에 남아있던 프린트 냄새,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조용한, 그러나 명확한 호의.


미미해서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나는 늘 사장님을 잊지 않는다.


사람은 일을 통해 만나지만,

결국은 태도를 통해 남는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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