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킨 일이나 잘하면 돼요.

by 이손끝


명함이었다.

아주 작은, 손바닥보다도 작고

때로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얇은 종이 하나였다.


하지만 그 작은 종이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를 바꾸고,

감정을 꺾고,

심지어 내 목소리의 높낮이까지 바꾸는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날도 평범하게 시작되었고 문제가 터졌다.

명함이, 잘못된 주소로 배송된 것.


진짜 문제는 그 뒤였다.

만약 배송이 완료됐다면,

나는 그곳 고객에게 부탁해 퀵으로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객은 이미

직접 택배사에 전화해

배송을 중단시키고 반송을 해두었다.


내 손을 쓰기도 전에

상황은 정지되어 있었다.


고객은 상담창에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냐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수를 인정했고,

빠르게 다시 제작해 보내겠다고 말했다.

돌아가는 택배를 기다리는 것보다

새로 제작해 보내는 게 훨씬 빠르다는 것도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솔직한 마음을 조금 얹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이렇게 계속 말씀하시니까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때였다.

전화기 너머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터졌다.


“저기요, 저는 그쪽한테 바라는 거 없어요.

그냥 시킨 거 제대로 하면 돼요.

지금 무슨 말을 듣겠다고 이런 얘길 하시는 겁니까?”


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 내가 착각했구나.

우리는 고객과 공급자일 뿐이었지.

공감도, 이해도

여기서 오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구나.


나는 그저,

사람이 하는 일이었기에

실수를 인정하고

정중하게 다가가면

그 너머의 ‘사람’이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고객이었다.

단단하게 역할에 스며든.


나는 거듭 사과를 하며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미안함과 억울함,

서운함과 후회,

그리고 관계의 한계.

그 모든 감정이 뒤섞여

잠들기 전까지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문득 깨달았다.

이 관계는 감정을 나누는 관계가 아니었구나.

‘공’의 영역은 ‘사’의 영역과 다르고,

내가 넘어서면 안 되는 선이 존재하는구나.


나는 공급자였다.

제품을 잘 보내고,

실수했을 땐 빠르게 복구하며,

정중하게 응대하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그날의 차가운 말이 명확하게 알려줬다.


“바라는 거 없어요.”

그 말은

정확히 말하면

“당신과 감정의 교류는 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날,

공과 사의 경계를 배웠다.


그건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보류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모든 관계에 사람 대 사람의 따뜻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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