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고객에게 시안을 보냈다.
그러자 돌아온 건 자유 교정도 없이 기계적으로 작업했느냐는 질책이었다.
말은 메일로 왔지만, 말보다 감정이 먼저 박혔다.
나는 메일로 주고받는 게 더 고단하다는 걸 안다.
문장은 때로 칼날처럼 잘못 읽히니까.
그래서 통화를 제안했다.
그렇게 통화가 시작됐다.
상대는 논리적인 여자분이었다.
조곤조곤, 하지만 빈틈없는 톤으로 말을 이어갔다.
불만은 우리의 작업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다른 곳은 여러 시안을 주던데요?"
"왜 여긴 초안 하나로 진행하는 거죠?"
나는 숨을 고르고 설명했다.
"저희는 고객님의 요청에 맞춰 초안을 잡고, 그 초안에서 수정해 가는 방식이에요."
"처음 요청하신 것도 다소 불명확했기에,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었고요."
"업체마다 작업 스타일이 다릅니다."
말을 마치고 나니
상대방 쪽 숨소리가 길게 들렸다.
그 끝에서 터져 나온 건 실망이었다.
“그럼 미리 그런 설명을 해주셨어야죠. 그랬다면 다른 업체를 썼을 텐데요.”
나는 그 순간 환불을 언급했다.
“마음에 안 드신 것을 진행해 드리면 저희도 죄송해서 환불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 같은 것이었다.
돌아오는 말이 무섭기도 했고,
긴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수정해 가며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방향은 잡혔다.
그리고 통화가 끝날 즈음,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풀려 있었다.
마지막엔 웃음기도 섞여 있었다.
나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를 건넸고,
그녀도 "고생 많으셨어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때부터였다.
속이 쓰렸다.
점심밥도 못 먹었다.
컴플레인은 언제나 그렇다.
몸에 남는다.
말은 지나갔어도, 몸은 기억한다.
왜일까.
나는 그저 일을 했을 뿐인데.
그런데 왜 나는 매번 이토록 마음을 소진하는 걸까.
‘프로페셔널하게 대응해야지.’
수없이 다짐하면서도
막상 그 자리에 서면
사람으로서 먼저 반응하게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냥 서비스니까, 그냥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서비스란 이름 아래 있는 것도
결국 사람인데.
말의 결은 마음을 때리고,
그 울림은 종일 가슴에 맴돈다.
나는 오늘도
컴플레인 하나를 무사히 넘겼다.
그런데 왜 자꾸만
허기만 남는 걸까.
그런데 참 이상하다.
꼭 이렇게 뭐라고 하셨다가,
풀려서 웃으며 통화 끝낸 분들은
이후에 또 찾아오신다.
마치 그 한 번의 충돌이
어딘가 작은 신뢰가 된 것처럼.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직설적으로,
때로는 “저번처럼 부탁 좀 잘 부탁드려요” 하며
다시 주문을 주신다.
나는 그걸 볼 때마다 묘한 마음이 된다.
그날 그렇게까지 험하게 다그쳤던 분인데.
그런데 또 온다.
어쩌면 그들도 알았던 걸까.
그 상황에서도
끝까지 예의를 잃지 않으려던 우리의 마음을.
그러니 결국은 그렇다.
컴플레인은 늘 힘들지만,
그 너머에 작은 관계 하나쯤은 남는다는 것.
그게 또 내일의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