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이다. 한때는 '이 나이'라면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불혹이랬다. 모든 게 안정되고, 눈치도 안 보며, 좋아하는 일을 당당히 하고 있을 거라고.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된 나는, 아직도 조심스럽고 눈치를 본다. 어쩌면 더 조심스러워졌는지도 모른다. 어른이라는 말은 어쩌다 이렇게 조용하고, 피곤한 단어가 되었을까.
시간은 흘렀다. 흘렀다는 말조차 얌전해서, 사실은 쏟아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실패하고, 방황하고, 아이를 낳고, 회사도 다니고, 사업을 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고 지우며 살았다. 잘 살고 있고 더없이 행복하다. 그런데도 가끔,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이었나?’라는 질문이 도마 위에 올려둔 칼처럼, 반질거리며 마음에 얹혀 있다.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에서 하나의 문장이 싹텄다.
“꿈을 꾸기에 늦은 게 아니라, 처음으로 진심이 된 시간이다.”
그 문장이 마음 한가운데서 자라고 있었다. 지금껏 수없이 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지금처럼 절실하게 진심이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고 싶다는 감정은 익숙했지만, 지금은 해야만 한다는 감정이었다.
드라마를 쓰고 싶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마음을 쓰고 싶다. 단순한 이야기 말고, 한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 슬픈 날 꺼내보게 되는 문장 같은 이야기.
노희경 작가님을 오래 사랑해 왔다. 작가님의 인물들은 늘 부끄럽고, 상처받고, 비틀거리면서도 어딘가 진심이었다. 예쁜 얼굴보다 예쁜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 쌈마이처럼 보이는데도 자꾸 생각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인물들이 좋았다. 내가 사랑했던 누군가를 닮은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미워했던 나를 닮은 것 같아서.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누구도 정답처럼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끝까지 미워하지 못하고, 끝내 사랑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들이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가는 마음들’을 쓰고 싶다고, 처음으로 진심이 되었다.
나는 언젠가 작가님의 손을 한번 꼭 잡고 싶다.
그 손끝에서 흘러나온 수많은 문장이 어떤 날에는 내 삶을 조금 덜 외롭게 해 주었으니까. 그 손끝이 참 고맙고, 나도 그런 손끝이 되고 싶어서.
마흔이라는 나이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마음이 단단해졌다. 이제야 말에 힘이 실리고, 감정에 뿌리가 생겼다.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진심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겁이 나면서도 설렌다.
쓴다는 게 무섭지만, 안 쓰면 더 무서울 것 같아서. 지금부터라도 쓰기로 했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닿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