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퇴근길에 맛있는 저녁거리를 샀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택배도 도착해서 기분 좋게 집에 갔다. 택배를 열어 안을 확인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막내가 바닥에 넘어져 머리를 부딪혔다. 큰애가 마구 벗어놓은 옷가지에 발이 걸렸던 거였다. 순간 아빠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큰애에게 소리를 질렀다.
옷 똑바로 벗어놓으랬지!
아이 아빠는 말보다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다. 화를 내면 사람 안의 공기가 바뀐다. 나 조차도 무섭다. 난 그 분위기에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몸이 굳는다. 아이는 더했을 것이다. 혼나는 첫째는 내 등 뒤로 숨었다. 손끝으로 내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 그만하라는 내게 남편은 더 역정을 냈다.
엄마가 맨날 그런 식이니까 애가 안 고치잖아.
그 말은 결국 내게도 날아왔다. 아이는 평소 옷가지를 제대로 치우지 않았던 건 맞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을 거들 수가 없었다. 나는, ‘무서운 표정을 한 아빠’와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아이’,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서 있는 나 자신’을 오랫동안 응시하게 됐다.
큰애는 방에서 울면서 내게 화를 냈다. 앞을 제대로 안 보고 넘어진 건 동생인데 왜 자기만 혼나냐고. 억울하다는 말 뒤에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을까. 나는 단단한 말로 눌렀다. “그럼 혼날 일 없게 잘해서 복수해.” 하고 싶은 말은 그런 말이 아니었다. ‘아빠가 너를 혼내려고 했던 게 아니라, 막내를 지키기 위한 마음이었다’라는 걸 돌려 말하고 싶었던 건데, 내 말은 자꾸만 엇나간다. 아빠의 뜻을 전하지도 못했고, 아이의 감정을 다독이지도 못했다. 다시 머리가 아팠다. 타이레놀을 먹었다.
밤이 깊어가자 첫째는 이불속에서 잠들었다. 나는 아이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얇은 팔, 작은 심장, 숨소리 하나하나를 들으며 생각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정답 없는 문제를 매일 푸는 일이구나. 아이는 자라는데, 나는 여전히 서툴다. 좋은 엄마가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잘 자라게만 하고 싶은데, 그 마음이 자꾸만 방향을 잃는다. 아이의 마음속엔 내가 준 어떤 흔적이 남았을까, 아니면 시간이 지우고 지나가줄까.
오늘 아침, 아이는 일어났다. 부은 눈도, 잔소리도 없이 “엄마, 잘 잤어?” 하고 물었다. 어제의 눈물과 억울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밝은 얼굴에 나는 또 안도했다. 그러니까 엄마의 하루란, 아이가 웃는 표정 하나에 구겨졌다가 펼쳐지는 것의 연속이란 걸 다시 배운다.
이런 날이면 깨닫는다. 육아란 매번 실패하는 시험 같지만, 아이는 그걸 정답으로 받아줄 때가 더 많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은 미안한 엄마로, 그래도 계속 안아주는 엄마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