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 젊었던 아버지는 자주 집을 비우셨다. 퇴근이 늦었고, 많은 약속이 있었고, 자주 낚시를 가셨다. 늘 바쁜 어른 같았고, 언제 돌아오실까 안 오실까를 눈치 보며 자랐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같이 웃던 장면보다는 문 열리는 소리를 기다리던 밤이 더 또렷하다. 대문이 조용하면, 우리 집도 조용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물론 아버지는 가정을 지키셨다. 엄마가 떠난 후에도 남아 있었고, 혼자 세 아이를 키우려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 일터로 향하셨다. 삐걱거리는 삶이었지만 그래도 지켜주셨다. 우리가 엄마로부터 버려졌다는 감정 속에서도 ‘그래도 아빠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이었다.
감사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시간들이 따뜻했다기보다는 견뎌낸 시간에 가까웠다. 함께한 기억은 있지만, 함께였던 추억은 선명하지 않다. 놀러 갔다 하면 낚시터였고, 우리는 거기서 할 일 없이 앉아 시간만 보내곤 했다. 아빠는 좋았을지 몰라도, 우리의 마음은 그곳에 잘 담기지 않았다. 추억 아닌 추억이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나는 내 아이를 키우며 다시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땐 왜 그러셨을까?’
가끔은 원망처럼, 가끔은 그리움처럼 떠오르는 물음. 그 질문은 누구에게 던져지기도 전에 스스로에게로 되돌아온다. "나라면 잘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을 확신하긴 어렵다.
요즘 아버지는 자주 전화를 하신다. "언제 얼굴 한번 보자." "보고 싶다."
그 말들이 낯설다. 한때 너무도 듣고 싶었던 말들이 이제 와서 들려오니 기쁘기도 하고, 묘하게 마음이 찡하다. 그래서 자꾸 망설이게 된다. 가야 할 것 같은데,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시간이라는 건 참 멀고도 가까운 거리라는 걸. 사랑한다는 말보다 "시간 좀 내줘"라는 말에 더 많은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고.
아버지는 서툴렀고, 나도 어쩌면 똑같이 서툴다.
어린 시절에는 아빠가 왜 그렇게만 행동했을까 궁금했고, 지금은 내가 왜 그토록 서운했을까 되묻게 된다.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조금씩 마음을 풀어보려 한다.
그 시절엔 못 나눈 말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그저 얼굴 한번 보는 일, 밥 한 끼 나누는 일, 손에 물 잔 하나 건네는 일, 그 속에 다 담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늦은 마음도, 마음이다. 다 자라서야 겨우 꺼내는 마음이 있다. 늦었다고 해서 가짜는 아니다. 어쩌면 지금이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아버지의 전화를 피하지 않으려 한다. 미워도, 서운함이 남아 있어도, 그 말속에 담긴 마음만은 받아들이고 싶다. 그 마음이 비록 늦게 왔다 해도 이제, 조금은 따뜻하게 웃어주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