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카는 열아홉이다. 한 번쯤 세상을 이기고 싶어지는 나이다.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말끝마다 “네가 뭘 아느냐”는 말을 듣는 나이. 조카는 운동을 한다. 운동부라는 작은 세계에서 땀보다 더 뚜렷하게 새겨지는 게 있다면, 그건 ‘서열’일 것이다. 계급은 실력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학번이나 말 잘 듣는 순서로 결정되는 곳.
조카는 잘못된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감독님’의 말이라 해도. “말이 상황마다 바뀌고 행동도 말과 달라. 그건 잘못된 거잖아.” 조카는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엔 맞는 말만으론 살아남기 힘든 곳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말 그대로 찍혔다. 언제부턴가 아이에게 폭언이 시작됐다. 말도 잘 안하는 아이인데, 말수가 더 줄었다. 어른에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는 엄마에게 물었다고 한다.
“어른이 하는 말이면 난 그냥 가만히 참고 있어야 되는 거야?”
언니는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나는 안다. 그 어떤 위로도, 이 아이가 지금 부딪히는 단단한 현실을 이겨주지 못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뭔가는 말해줘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를 탓하지 않도록. 그 고개가 꺾이지 않도록.
나는 아이에게 ‘참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참아야 할 순간도 있지만, 참기 위해서 너 자신을 버릴 필요는 없어. 너는 맞는 말을 한 거야. 다만, 때로는 세상이 틀렸다는 걸 말로 증명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
조카의 슬픈 끄덕임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나는 안다. 아이가 속한 운동부의 세계는, 아직도 ‘예’와 ‘아니요’ 사이의 틈에 자존심이 찢기는 곳이다. 말이 빠르면 싸가지가 없고, 느리면 멍청하다는 평가를 받는 곳. 어른은 감정을 지시하고, 아이는 체력을 동원해 복종하는 구조. 그 속에서 조카는, 낡은 시스템과 자신의 감각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조카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너는 지금, 너 자신을 지키고 있는 거야.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하지만 이 말을 하는 나도 솔직히 말하면 불안하다. 이 아이가 이 구조 안에서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는 것이 아닐까. 현실의 냉정함이 때로는 정의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감독의 눈밖에 들면, 이 아이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경기에 못 나가는 게 지금의 룰이니까.
“참는 건 너 자신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너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 전략을 짜는 거야. 지금은 네 진심을 다 꺼내놓기보다, 때를 기다리는 게 필요할 수도 있어.”
'그게 너무 어렵다.'
조카는 속으로 생각할 거다. 나또한 그 생각의 무게를 안다.
세상은 아직도 참는 법을 먼저 가르친다. 불합리를 견디는 아이에게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어른이 되는 건 참는 법을 아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 참아야 하고, 어디부터는 말해야 하는지’를 아는 일이라는 걸.
내 조카가 그 경계에서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진심이 무너지지 않기를, 그가 세상 앞에서 고개를 너무 일찍 떨구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야, 네가 옳다는 말은, 어쩌면 지금 당장은 아무 힘이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이 언젠가는 너를 지켜줄 유일한 언어가 될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너무 아프면, 잠시 돌아서 있어도 좋아. 그 대신, 너 자신만은 잃지 말자.
나는 오늘도 너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