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다. 표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이익도 적지 않았다. 말은 참을 수 있었고, 행동은 미룰 수 있었지만 얼굴은 그보다 더 정직해서, 눈썹의 각도나 입꼬리의 높이가 마음보다 먼저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신혼 초, 시댁에 갔을 때였다. 어른들이 신랑이 동안이라며 입을 모아 칭찬했다. 내 얼굴이 저도 모르게 굳어졌다. 시어머니가 물으셨다. “표정이 왜 그래?” 나는 얼떨결에 “저는 잘 모르겠어서요”라고 답했다. 순간 공기가 확 식었다.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분명히 무례하다 느끼셨을 것이다. 돌아와서 나는 몇 번이나 그 장면을 되짚어보았다. 왜 나는 그 순간, 조금 더 웃어줄 수 없었을까. 꼭 진심만을 말하듯 그렇게 얼굴을 내보였어야 했을까.
며칠 전엔 택배 기사님이 조금 일찍 물건을 가지러 오셨다. 나는 그날 마감이 밀려 손이 발이 되게 움직이던 중이었고, 기사님의 “물건 다 실렸어요?”라는 질문에 미처 웃을 틈도 없이 “아직 작업 중이에요.”라고 했다. 내 표정은 굳어 있었고, 어깨도 굳어 있었고, 아마 목소리도 날이 서 있었을 것이다. 기사님은 “그럼 이따 다시 올게요.” 하고 조용히 돌아섰다. 그 순간 나를 때린 건, 더운 날씨도 아니고 미완의 작업도 아니었다. 감사하다, 더운데 고생 많으시다,라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표정 하나로 벽을 세우고, 말 하나로 사람을 밀어낸 것이다. 내 민낯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나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따뜻함을 전하며 살고 싶은 사람인데.
이럴 때마다 스스로가 미워진다. 나는 왜 자꾸 이런 식으로 진심을 전달하는 데 실패하는 걸까. 정직함과 무례함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 경계에서 자주 넘어진다. 진심은 있었는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다. 말로는 배려를 떠올리지만, 몸은 생각보다 훨씬 느리고 거칠다. 나의 솔직함은 어른스러움을 지나쳐 미숙함이 되고, 무례함이 되고, 때로는 오만으로 읽히기도 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고, 표현 방식이 각기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떻게’가 언제나 ‘무엇을’보다 앞서고, 마음보다 방식이 먼저 전달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이런 나를 ‘꾸밈없다’고 여겼다. 좋은 말이고 착각이었다. 꾸밈이 없다는 건 가끔은 너무 날것의 상태로,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로 다가갈 때가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을 완전히 감추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타인과 마찰 없는 언어’로 번역하는 기술을 갖는 일이라는 걸. 사람을 배려한다는 건, 결국 내 감정을 조절해 그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는 걸.
나는 연습할 생각이다. 내 얼굴의 정직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되, 그것이 너무 앞서 가지 않게 조율하는 법을. 솔직하되 곧장 말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되 마음이 닿을 수 있게. 그러니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감정을 다루는 일도, 따뜻함을 전하는 일도.
누구보다 인간적인 따뜻함을 원하고, 나 또한 전하며 살고 싶다. 그 마음이 나를 뛰어넘어 닿으려면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잘 알아야 할 것 같다. 사람을 향한 나의 마음이, 내 얼굴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