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지구가 끝나는 날, 그 자리에 남은 열 명 중에 내가 끼어 있다면. 난 인류를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하고.
처음엔 겁이 났다. 나는 전투도 못하고, 의사도 아니고, 생존 기술도 없다. 누군가는 전기를 만들고, 누군가는 먹을 걸 구할 텐데 나는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래 생각해 봤다. 그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일 거라고. 어디선가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고, 어디선가 희망이 사라졌고, 그래서 자기도 꺼져버릴 것 같은 밤이 올 거라고.
그 밤에, 나는 말을 건네는 사람으로 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너 괜찮아?”
“나도 그래.”
“조금만 같이 있어줄게.”
그 짧은 말들이 누군가의 숨을 붙들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고.
나는 나약하게도 자주 무너졌다. 사업도, 육아도, 관계도 날카로운 유리처럼 나를 찔렀다. 다 그만두고 싶었던 날엔, 소파에 주저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나 자신에게 말 걸기를 반복했다.
“너 지금 힘들지.”
“괜찮아, 좀 쉬어.”
“조금만 더 가보자.”
그 말들이 나를 구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다시 꺼내 사람들에게 건넸다.
누군가는 내게 글을 왜 쓰냐고 물었다. 누군가는 왜 감정을 그토록 길게 붙잡냐고 했다. 그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사라질 뻔한 마음들을 기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나가버리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고민해서 해결되지 않는 철학적인 물음은 골치 아픈 일이고, 그건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사라지는 감정들이야말로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어준다고. 그래서 나는 계속 기록하고 싶다. 명함에 새겨지는 한 줄의 문장을, 블로그에 쌓이는 사소한 기록들을, 밤중에 갑자기 적어 내려 간 메모 한 줄을.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 말 한 줄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게 해 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나는 지구 최후의 날에도 ‘말을 건네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