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공동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대각선으로 엘리베이터 문 안쪽에서 마주 본 그들은 부부와 아이로 보였다. 조용하고 짧게 아빠가 말하는 게 들렸다. "그냥 닫아."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목소리는 작지 않았다. 흘러나온 게 아니라, 던져진 말 같았다. 엄마는 차마 그럴 수 없는 듯 미세하게 고개를 돌렸고, 내쪽을 힐끔 보았다. 엘리베이터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나는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해 얼른 타려고 유모차를 밀며 빠르게 걸었다.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은 바빴다.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공간이 될까. 하지만 세 사람은 유모차가 들어갈 자리를 벌려주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였다. 움직이지 않았고, 반걸음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유모차가 들어갈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난 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 말없이, 애매하게. 그러자 그 아빠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먼저 올라갈까요?” 문장은 정중했지만 그 말이 가진 의도는 분명했다. 타지 마세요, 우리 먼저 올라갈게요.
나는 멋쩍게 “네...” 하고 대답했다. 목소리가 나도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불편한 공기가 좁은 현관에 가득했다. 엘리베이터 문은 말끔하게 닫혔다. 문이 닫히는 속도보다 내 가슴 안쪽이 차가워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유모차 안 아이는 천진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직 어려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게 다행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들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층수를 바라보았다. 숫자가 하나씩 켜질 때마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배려란 얼마나 작아도 누군가의 하루를 무겁게 할 수 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며칠 뒤, 같은 장소. 아침 시간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등원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하지만 그 안엔 이미 다섯 명이 타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가득 찬 공간이었다. 아빠, 엄마, 아이 셋. 순간 타도 되나 싶어 망설였는데 그들이 먼저 움직였다. 아이 둘이 나란히 몸을 붙였고, 엄마가 안고 있던 막내를 가슴 쪽으로 바짝 끌어안았다. 아빠는 등을 문 쪽으로 틀며 몸을 한 발짝 옆으로 밀었다. 말 한마디 없이 이루어진 자리 조정.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유모차가 끼어들 듯 들어가자 안에선 아이가 고개를 들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짧게 웃어 보였다. 잠시 후, 1층에 도착했다. 나는 유모차를 조심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그 찰나, 아빠가 팔을 쭉 뻗어 문을 잡아주었다. 그의 손엔 도시락 가방이 들려 있었다. 어깨에는 아이의 옷가지가 걸려 있었고, 한 손으론 막내 아이가 준 초코바 봉지를 들고 있었다. 바쁠 거였다. 그도, 그 가족도. 아침마다 셋을 챙기고, 옷을 입히고, 유치원까지 보내야 할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인을 위한 ‘정지’를 선택했다.
나는 두 경우 모두에 놀랐다. 하지만 감정은 정반대였다. 첫 번째 상황에서 느꼈던 놀람은 스치듯 차가웠고, 두 번째 놀람은 오래도록 따뜻했다. 첫 번째는 배려받지 못한 기억이었고, 두 번째는 내가 잠깐 받아들여졌던 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거리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어떤 이는 불편해하지 않기 위해 더 멀리 돌아가고, 어떤 이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서로의 시간을 존중한다. 나는 두 번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곁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람. 말없이 문을 잡고, 잠시 서 있고, 한 걸음 물러나는 사람. 그렇게 내 하루를 나누고 싶은 사람.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이 두 상황 중 어떤 쪽에 가까운 사람일까. 늘 후자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무언가에 지치고,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날엔 나도 누군가에게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공간을 내어주지 못했던 적이 있었을지도. 그래서 더 조심하고 싶다. 그날의 그 아빠처럼 되지 않기 위해.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가 내 행동에 씁쓸함을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해. 아주 사소한 일이 누군가의 마음을 기울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러니 나는 바란다. 당장 조금 불편하더라도, 손해 보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하루를 가볍게 만들어줄 수 있는 그런 행동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엘리베이터 문을 잠깐 잡아주는 일처럼. 유모차 하나 들어올 수 있게 반보 뒤로 물러서는 일처럼. 말없이 곁을 내어주는 그런 사람이 많은 도시. 나는 그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 아이가 자라 세상에 나갔을 때, 그가 만나는 수많은 문이 닫히기보다 열려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