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말했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자기 지인 중에 사업을 크게 하는 사람이 있단다. 그러더니 그 사람이 곧 자기에게 사업 이야기를 해줄 거라고.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처음에는 웃음이 났고, 그다음엔 한숨이 나왔다. 그래, 누군가 시간을 내주고, 노하우를 나눠주고, 방향을 짚어준다고 하면 반가운 일이겠지. 세상에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열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정말 도움일까. 나는 속으로 여러 번 반문했다. 아무 대가 없이 시간을 내주는 사람은 없다. 특히 자기 시간을 ‘가치’로 환산하며 사는 사람들일수록 그렇다. 성공한 사람이면 더더욱. 동생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정보는 공짜처럼 보이지만, 다 ‘호의의 포장’을 하고 있는 상품일 수 있다고. 그런데 그 말을 꺼내면 동생은 나를 ‘세상에 찌든 사람’이라 여길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그랬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그런 말에 혹했던 적이 있었다. 누구는 한 달 만에 월 천을 벌었다고 했고, 누구는 3개월 만에 직원 열 명을 뒀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노트북 하나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SNS 속에서는 성공이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일어났다. 하늘은 맑고, 셔츠는 구김이 없고, 그들의 계좌는 늘 활기가 넘쳤다. 나도 어느 순간 그 세계에 발을 디뎠다. 몇 번의 클릭, 몇 번의 연락. 상담을 받았고, 누군가를 만났고, ‘기회’라는 이름의 제안서를 여러 번 받아봤다. 컨설팅비를 받지 않는다던 사람은 결국 상품을 추천했고, 그 상품은 몇십만 원짜리 교육이거나, 이름 모를 사이트에 올려둔 수익형 프로젝트였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시도했다. 그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고, 실패는 돈이 아니라 시간을 갉아먹었다. 그리고 자존감. 거기서 나는 배웠다. 누가 나를 위해 시간을 쓰겠는가, 누가 아무 조건 없이 노하우를 내어놓겠는가. 돈을 버는 것엔 대가가 따르고, 가능성은 가까워 보이지만 멀리 있다.
동생에게 지금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내가 겪어본 바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이득을 보기 위한 포석으로 접근해 온다고. 돈을 먼저 요구하지는 않지만, 결국 어딘가에 자신이 이득을 챙길 구조를 숨겨두고 있다고. 도움처럼 보이는 정보가 사실은 ‘사전작업’ 일뿐이라고. 하지만 다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어쩌면 한 번쯤은 꼭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로만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세상에 후회는 없을 것이다. 결국 나도, 남이 말해줘서 아는 게 아니라 '해봐서 아는 사람'이 됐다. 돈을 날리고, 사람을 잃고, 시간을 버리고 나서야 알게 됐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쉽게 버는 돈도 없다는 걸.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하염없이 반복한 실패 끝에 도달한 당연한 진실이었다.
요즘 SNS에는 성공을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로 눈에 띄는 사진을 올리고, 의도된 부와 자유를 보여준다. 거기엔 과정이 없다. 고민도, 실패도, 고통도 가려져 있다. 말끔하게 정리된 배경과 하이틴 필터 속에서, 사람들은 자꾸 자신이 뒤처진 것 같다고 느낀다. 그 비교는 착각인데, 그걸 안다고 해서 덜 초조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동생이 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게 나는 속상했다. 동시에 나도, 그 시절의 내가, 그랬다는 걸 알기에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묘하다. 걱정과 연민과 체념이 한꺼번에 드는 마음.
속으론 바라고 있다. 동생이 크게 깨지지 않기를. 그 시간과 감정의 비용이 너무 크지 않기를. 누군가의 헛된 말 한 줄에, 헛된 희망 하나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기를.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왜 안 되는지’가 아니라, ‘어디부터 잘못됐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실 무엇을 알고 있느냐 보다 무엇을 겪었느냐인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걱정하는 대신 기다린다. 그리고 기도처럼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부디, 쉽게라는 말에 다치지 않기를. 부디, 쉽게란 말을 쉽게 내뱉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