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멈추기로 한 해.

by 이손끝


올해는 배우지 않기로 했다. 새로 배우는 일에 시간을 쓰지 않기로, 그리고 그 유혹에 자꾸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하반기에 들어섰다. 불안과 허세를 다독이며 잘 참았다.


나는 워킹맘이다. 매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아홉 시까지 사무실에 도착한다. 일을 하고,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시간만큼 나를 내어준다. 다섯 시가 되면 업무를 정리하고, 아이를 데리러 간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안고 나오면 하루가 끝나기 직전까지 한 줄로 이어진다. 대단한 육체노동도 아니고, 정신을 갉아먹는 일도 아닐 수 있지만, 하루가 가지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아이와 함께 집에 들어오고, 씻기고, 먹이고, 눕히고, 자는 걸 재촉하는 하루의 마무리는 거의 숨 참기다. 겨우 아이가 잠들면 나도 바닥에 늘어진다. 몸을 움직이는 일,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생각을 꺼내는 일, 그 어느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마음을 먹기가 점점 어렵다. 아니, 마음은 늘 앞서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나는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그 사이를 겨우 버텨낸다. 그게 지금의 일상이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전부다.


예전에는 달랐다. 매년 하나씩은 꼭 배웠다. 자격증 하나, 마케팅 강의 하나, 디자인 툴, 글쓰기 클래스, 브랜드 워크숍, 인스타그램 광고, 챗GPT 활용법. 무엇이든 놓치면 뒤처질 것 같았고, 뒤처지면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항상 돈을 썼다. 매년 몇 백씩. 결제 버튼을 누르며 ‘이걸 알면 뭔가 달라질 거야’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강의는 열지 못한 채 묻혔다. 듣다가 멈췄고, 하다가 흥미를 잃었고, 결국 나중으로 미루다 포기했다. 이건 지금 할 때가 아니야,라는 마음을 수없이 들여다보다가 그럼 대체 언제 해야 하지? 같은 반문에 빠지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계속 배워야만 하는 삶은 끝이 없다. 자꾸 배운다는 건 사실 자꾸 불안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배우고, 이 정도로는 불충분할 것 같아서 또 배우고, 그렇게 채워도 계속 고픈 마음으로 남는, 배움이라는 이름의 불안들. 나는 올해, 그 불안을 내려놓아 보기로 했다. 당장 새로운 것을 얻지 않더라도, 당장 대단해지지 않더라도, 나를 채우지 않기로. 있는 걸 지키는 데 집중하기로.


올해의 목표는 단 하나다. 별일 없이 잘 유지하는 것. 확장보다 유지. 높이보다 깊이. 대단한 꿈을 갖지 않고, 가진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 그게 내게는 가장 정직한 목표다. 지금의 삶은 빠듯하고, 벅차다. 스스로에게 주어진 몫 이상을 하려다 무너진 날도 있었고, 남의 속도를 부러워하다 허탈했던 밤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배우지 않아도 괜찮다. 뒤처지는 것 같아도, 올해만큼은 나의 속도를 존중해 보기로 했다. 아이를 재워두고 무언가를 하는 지독한 성실함은 내 몫이 아니다. 나는 충분히 하고 있다. 누군가가 자꾸 성장하라고 등을 떠밀어도, 나는 가만히 내 자리를 다잡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켜낸 하루들이 모여서, 올해가 나에게 ‘버텼다’는 기록으로 남기를 바란다. 계속해서 욕심을 냈던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고. 잠시 멈춘다고 삶이 멈추는 게 아니라고. 나를 훈련시키는 방식은 꼭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 아니라고. 어떤 멈춤은, 가장 필요한 성장이기도 하다고. 그걸 몰라서, 몇 번이나 불필요한 강의에 시간을 쓰고, 몇 번이나 흥미를 가장하며 낯선 분야를 공부하다 포기했던 걸 생각하면, 나는 지금이 훨씬 나아졌다고 믿는다. 내 감각을 듣고, 내 에너지를 바라보고, 이만큼이면 됐다는 걸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그리고 그런 나는, 올해 더 무너지지 않고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올해의 나는, 배우지 않는다. 대신 더 깊이 숨 쉬고, 더 조용히 살아낸다. 그렇게 내 삶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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