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껍데기 사과냐, 품위냐.

by 이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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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버지가 혼자 해장국집에 다녀오셨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커피 자판기에서 무료 커피를 뽑았는데 맹물만 나왔다고 한다. 직원에게 말하자 “원래 서비스로 나가는 거라 의무는 아니다”라는 대꾸가 돌아왔고, 아버지는 “그럼 왜 둔 거냐”라고 물었다. 그때 주방 안에서 사장이 튀어나와 “더워 죽겠는데 뭐 하는 거 씨 X” 하고 욕을 퍼부었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파출소에 가셨고, 거기서 자녀와 함께 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와달라는 이야기였다.


언니는 가겠다고 했다. 이 일은 잘잘못이 분명한 문제라고. 같이 가서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빠에게서만 일방적으로 들은 이야기로 판단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우르르 몰려가는 일’이 더 우스웠다. 그 자리에서 손님에게 무례를 저지른 건 분명히 사장 잘못이다. 하지만 그 잘못에 가족이 떼로 몰려가 대거 항의하는 장면은, 마치 자존심을 복수처럼 사용하는 것 같았다. 사과를 받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사과할 마음이 없으니 고소할 테면 하라고 했단다. ‘사과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서 짜낸 사과’는 의미가 없다. 그런 사과는 단지 표정만 입은 껍데기일 뿐이다. 나는 그런 껍데기를 모으며 내 자존을 지키고 싶지 않았다.


물론 괘씸하다. 분하고, 어이없고, 어른에게 대놓고 욕을 한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하지만 그 분노를 길게 붙들고 있을 이유는 없다. 나는 생각했다. 이게 복수인가? 그렇다면 유치하다. 자존심인가? 그런 상대에게 자존심을 거는 일은 오히려 초라하다. 그 사람이 갱생되길 바라는가? 그것 역시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인간 교육을 내가 도맡을 수는 없다. 나는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질 이유가 없고, 그 사람 역시 내 감정의 주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판단은 서로 달랐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늘 그렇게 믿는다. 판단은 하늘이 내리고, 복도 벌도 하늘이 가져간다고. 내가 벌을 대신 내리려 들면, 결국 그 감정으로 내 삶이 더 고달파진다. 괜한 일에 마음 쓰고, 감정 쓰고, 시간까지 쓰면, 원래 괴롭던 사건에 또 하나의 고단함이 더해진다.


나는 감정의 물꼬를 잘 안 튼다. 한 번 터지면 거세게 밀려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잠시 분노가 스쳤지만, 나는 발을 빼는 쪽을 택했다. 앞으로 안 가면 될 일이었다. 잊고, 비우고, 그 장소를 마음에서 지워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곳은 이제 다시는 가지 않는 곳이 될 뿐이다. 무의미한 사과에 목매는 대신, 나는 나의 하루를 보존하고 싶었다. 나의 에너지를 내 삶을 더 단단히 꾸리는 데 쓰고 싶었다.


앞으로 나는 커피 자판기를 다시 누르지 않을 것 같다. 의무가 아닌 서비스. 그러니 주는 걸 감사해하며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씁쓸해질 것 같아서. 내 돈 주고 카페에서 당당히 사 마시리라. 나는 아버지가 겪으신 일을 이렇게 정리한다. 사과를 받아야 할 일은 맞지만, 받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다. 억지로 받아내려 애쓰는 대신, 무심히 지나쳐버릴 수 있는 단단한 선택. 그건 회피가 아니라, 지키고 싶은 품위에 대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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