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분노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어디선가 듣고는 기억을 하고 있다. 이 말이 마음에 들어 오래 곱씹었다. 분노하지 않는다는 건, 속에서 화가 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안다.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고, 참고, 넘기고 나서, 다시 돌아보며 그럴 수도 있었다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는 사람. 그런 사람을 어른이라 부른다.
어릴 적엔 어른이 되면 뭐든 내 맘대로 일 줄 알았다. 늦게 자고, 먹고 싶은 걸 골라 먹고, 가고 싶은 데 마음대로 가는 존재.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맘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맘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조심하고 감추며 살아야 했다. 가령, 마트 계산대에서 앞사람이 너무 느려도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고, 택배 기사님이 문 앞에 박스째 두고 갔을 때도 전화로 항의하지 않고 ‘바쁘셨겠지’하고 사정을 배려해 넘기고, 아랫사람이 예의 없이 굴어도 그 자리에서 소리 내지 않는 것. 그런 게 어른의 감정 사용법이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 감정의 온도를 넘긴다. 분노와 수용 사이, 꾹 참고 난 후에 오는 서글픔. 어른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마른 흙처럼 들렸다. 축축한 감정이 묻으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은. 그래서일까, 누군가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그 사람에게서 감정이 말라 있진 않은지 먼저 살핀다. 감정을 없앤 채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감정을 조절하며 살아가는 것 사이의 미묘한 차이. 나는 가능한 한 후자의 사람이 되고 싶다.
어른이 된다는 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상황을 내 쪽으로 끌어안는 일 같다.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그 자리에서 바로 되받아치지 않고, 잠시 미루고,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정리하는 일. 물론 그 정리는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방식이다. 가령, 더 이상 가지 않는 단골가게 리스트에 조용히 이름을 지우는 식. 같은 말을 해도 덜 아프게, 덜 상처 주게 말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 아이의 실수를 책망하지 않고, 배우자의 실수를 묻지 않고, 나 자신에게도 너무 심하게 굴지 않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요즘 들어 나도 어른이라는 말이 무거워졌다. 내가 어른이 되어야 할 자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이 앞에서는 언제나 어른이고, 사업을 하며 고객과 대화할 땐 말할 것도 없다. 내 안의 감정을 수없이 눌러 접고 나서야, 어른이라는 자리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꼭 상처가 쌓이는 일만은 아니다. 어른이라는 건 감정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수납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일 같았다. 더 깊은 서랍에, 더 넓은 칸에, 때로는 이름을 붙이지 않은 채 놓아두는 일. 그걸 자꾸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지나가게 두는 사람이 된다.
나는 아직 그 어른에 다 닿지는 못했다. 가끔은 내 안의 아이가 먼저 얼굴을 내밀고, 가끔은 억울하다는 말이 목울대를 넘어오고, 때로는 서운함이 눈가에 물처럼 고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참는다. 나를 위해, 내 아이를 위해, 내 하루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감정에 함부로 불을 지르지 않는 사람, 그걸 감당할 체력을 아껴두는 사람. 그런 식으로 하루하루, 나는 감정을 길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