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 안에 숨어 있는 따뜻함을 좋아한다. 말 한 마디의 울림, 배려에서 묻어나는 진심, 내 감정을 헤아리는 조용한 눈빛 같은 것들. 사람의 '모습'보다, 사람이 스쳐 지나갈 때 남기는 ‘잔향’을 좋아한다. 그것은 순간의 공기처럼 미세하고, 금세 사라지지만, 내 마음에는 오래 남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람을 잘 피한다. 만나기 전부터 마음이 복잡해지고, 대화를 나눈 뒤엔 온몸이 녹초가 된다. 혼자 있는 게 훨씬 편하고, 가끔 약속이 취소되면 기쁘기까지 하다. 모순이다.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사람을 두려워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 전체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들어 있다. 친절과 배려만 있는 게 아니다. 질투, 공격성, 무례함, 그리고 이유 없는 비열함도 있다. 겉으론 웃지만 속으로는 판단하고, 말로는 위로하면서도 시선은 날카롭다. 나는 그런 이면을 보는 게 무섭다. 특히, 따뜻할 거라 믿었던 사람의 차가운 모습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다음 관계로 나아가는 발목을 붙잡는다.
사람이 좋은 이유도, 사람이 피곤한 이유도 결국 '감정'이다. 그 사람 안에 따뜻한 감정을 볼 때 나는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 감정 뒤에 숨어 있는 이기심이나 무책임함을 마주할까 봐, 나는 관계의 문 앞에서 쉽게 주저한다. 친절을 기대했다가 무관심을 받는 일, 배려를 전했지만 이용당하는 일, 눈빛을 맞췄지만 외면당하는 일.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쉽게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 상처는 사람을 다시 피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가능성을 애초에 피하는 쪽을 선택한다.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다치지 않으니까.
그러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사람을 떠올린다. 드라마 속 한 장면, SNS에 스친 누군가의 이야기, 지나가는 뉴스의 인터뷰 한 줄.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사람의 따뜻함을 찾아낸다. 그 모순이 나를 괴롭히기도 하고, 어쩌면 그 모순 덕분에 나는 글을 쓴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면, 상처받기 쉬워진다. 그리고 나는 그 상처에 너무 약하다. 그래서 오히려 멀리서 바라보는 방식을 택한 것 같다. 실제의 관계보다, 기록된 관계를 더 신뢰하고, 말보다는 글을 더 사랑한다. 그 안에선 사람의 추한 모습이 잘려 나가고, 좋았던 감정만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적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의 사람은 예측 불가하고, 불완전하고, 종종 잔인하다. 하지만 내가 글 속에서 그려내는 사람은 항상 따뜻하고, 조용히 위로하고, 말 대신 눈빛으로 말을 건넨다. 그건 현실이 아니지만, 내가 바라는 세계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을 피한다. 사람의 인간다움을 사랑하면서, 인간의 모순성과 비열함을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사람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사람과 관계 맺는 유일한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글 속의 사람은 상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글 속의 사람은 언제나, 내가 믿고 싶은 사람이다.